프로의 힘 / 마경덕
저 사내는 프로다
배고파도 목말라도 발 저려도 종일 그 자세로
한 번도 졸지 않고 싸늘한 바닥에 앉아
악취를 참고 배뇨를 참고 가려움을 참고 추위를 참고 소음을 참고
매캐한 먼지를 참고 치미는 화를 참고
지하계단에 무릎 꿇고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 저 늙은 사내,
이십 년 한자리에 눌러앉은 그 게으름이
사내를 먹여 살린다
지하도 입구
삼 년 경력 절름발이 사내
졸다가 자다가, 누웠다가 앉았다가 늘 근무태만
돌아앉아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고
지나가는 여자에게 쌍욕도 하고,
오줌 누러 가고 밥 먹으러 가고 비 온다고 눈 온다고
아프다고, 생업을 작파하고 수시로 자리를 뜨는 그 부지런함에
늘 배가 고프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
걸인(乞人)이 되려면 이 모든 것을 통과해야 한다
- 마경덕 시집『글러브 중독자』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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