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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朴壽根

o예술가의 삶과 작품

by 송강 작가 2018. 1. 18. 12:36

본문

박수근 朴壽

 

출생 1914년
사망 1965년
유형 인물
직업 서양화가
대표작 봄이 오다, 절구질하는 여인, 빨래터, 귀가, 고목과 여인
성별
분야 예술·체육/회화

     1914∼1965. 서양화가.

 

       
박수근(1914-1965)

1914∼1965. 양화가.

개설

강원도 양구 출신. 아버지 향지(享智)와 어머니 윤복주(尹福珠) 사이에서 6남매 가운데 맏아들로 태어났다. 양구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가세가 몰락하게 되자 진학을 포기하고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시작하였다.

활동사항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수채화 「봄이 오다」가 입선된 이후 1936년부터 1944년의 마지막회까지 이 전람회의 공모 출품을 통하여 화가로서의 기반을 닦았다.

1952년 월남하여 대한민국미술전람회와 대한미협전(大韓美協展)을 통하여 작품 활동을 계속하였다. 1959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추천 작가가 되었으며, 이어 1962년에는 심사 위원이 되었다.

그는 “나는 인간의 착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며 그들의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물론 어린아이들의 이미지를 가장 즐겨 그린다.”라고 하였다.

주제에 있어서 앞의 말대로 그가 실제로 체험하였던 주변의 가난한 농가의 정경과 서민들의 일상적이고도 평범한 생활 정경을 주로 사용하였다. 또한 이러한 주제에 풍부한 시정(詩情)을 가미하여 일관성 있게 추구하였다. 그리고 표현 방법에 있어서도 향토색 짙은 자신의 독자적인 양식을 구축하였다.

특히 돌밭이나 화강암의 질감을 연상시키는 마티에르는 그의 화풍상의 큰 특징이다. 붓과 나이프를 사용하여 자잘하고 깔깔한 물감의 층을 미묘하게 거듭 고착시켜 마치 화강암 표면 같은 바탕을 창조하였다. 그리고 그 위에 독특한 감흥을 주는 굵고 우직한 검은 선으로 형태를 단순화시켜 한국적 정감이 넘치는 분위기를 자아내게 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1952년 이후 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하여 말년에 이르러 한층 더 심화되었다. 공간 구성에 있어서도 요약화된 형태들을 평면적으로 대비시켜 배치함으로써 그의 특이한 구성미와 현대적 조형성을 더욱 충실하게 이룩하였다.

그가 이룩한 회화 세계는 그가 죽은 뒤에 1965년 10월 중앙공보관에서 열렸던 유작전과 1970년 현대화랑에서의 유작전을 계기로 재평가되어 유화로서 가장 한국적 독창성을 발휘한 작가로 각광을 받고 있다.

대표작으로 「절구질하는 여인」(1952년)·「빨래터」(1954년)·「귀가(歸家)」(1962년)·「고목과 여인」(1964년) 등이 있다.

 

한국 화가 중에서 가장 독창적이면서도 평범한 한국의 서민상을 주제로 삼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그림에는 꾸밈없는 생활 속의 시골사람들이 등장한다. 행상이나 빨래터 또는 절구질하는 아낙네들이 주로 등장하고 담소를 즐기는 노인들이나 놀이에 빠진 어린이들도 즐겨 그렸다. 상당수의 화가들이 서구적 분위기의 귀부인이나 유한(有閑) 취미 속의 고급스런 인물을 선택할 때 그는 생활 속에서 소재를 찾았다.

이같은 인물들은 거짓 없는 한국인의 한 전형으로 화면에 묘사되었다. 또한 그가 그린 자연도 양상한 가지만 남은 나목(裸木)이기 십상이었다. 특히 공간감을 무시하고 대상을 평면화시켜 이 소재들은 극도로 단순명료한 형태로 응축되었다. 절제된 선묘(線描)는 결코 허장성세(虛張聲勢)에 의한 과장법도 아니고 그렇다고 극도로 추상화되어 본질을 은폐시키지도 않았다. 절제의 미를 체질적으로 화면에 옮겨 민족정서를 그려냈다.

특히 화면 바탕의 처리방식이 독특하여 두툼한 질감을 느끼게 했다. 한반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강암의 표면처럼 우툴두툴한 효과를 냈다. 마치 오랜 풍상에 시달린 마애불상처럼 형상이 바탕의 매체에 깊이 스며 일체감을 이룬 자연성을 느끼게 했다. 또 회색 등 무채색 계열을 기조색으로 삼고 있어 한결 깊이있고 무게가 있는 듯한 장엄미도 배어 있다.

원색에 의한 화려함을 거부하고 질박한 색채와 표면질감으로 견고함을 이루어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가졌다. 오랜 잔향(殘響)이 남게 되는 그의 화폭은 한국인의 정서와 맞아 떨어져 부담감 없는 조형적 호소력을 가졌다. 회색조의 두툼한 질감 위에 평범한 인물과 주변풍경이 간결하고 담담한 단순구도로 압축되어 있다. 이 때문에 이중섭(李仲燮)과 쌍벽을 이룬 1950년대 이후 작가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중섭이 분방한 선묘에 다양한 색채를 구사했다면, 박수근은 반대로 최대한 절제된 화면효과를 추구했다. 둘 다 민족회화의 구현이라는 독자적인 세계를 이룩했지만, 박수근은 보다 규모있는 대작으로 일관된 조형논리를 전개시킨 특징을 보인다. 대표작으로 〈농악〉(1932)·〈나무와 여인〉(1950년대)·〈행인〉(1964)·〈할아버지와 손자〉(1964)·〈소와 유동(遊童)〉(1962) 등이 있다.

 

 

 

 

 

할아버지와 손자 / 박수근

박수근, 〈할아버지와 손자〉, 1960, 캔버스에 유채, 145.2×97.3㎝,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출처 이미지 사이즈 532x800 |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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