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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수사/ 이수

o문학 세상

by 송강 작가 2018. 1. 16.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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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수사/ 이수


숲 속은 바닥에 끌리는 수사복을 입고 있었다
어둠이 부풀오르는 전나무숲 사이로
돌담 성벽은 허공을 안은 완강한 표정이었다

천년을 살아 온 것 같은 
등이 굽은 
늙은 수사의 눈빛이 촛불에 일렁거렸다
겨울이 오면
적막이 흘러나오는 수도원에서
벽에 붙어 있는 중세의 수사들과
밤새 중얼거리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지하실을 내려가는 늙은 수사의 허리춤에는
의문부호 모양의 열쇠가 쩔렁거렸다
지하실의 고서는 지문으로 남아 
중세의 기억을 읽어내는 중이었다
먼지가 쌓인 궤짝은
천년을 내려오는 금서들로 봉인되었다

늙은 수사가 궤짝을 더듬으며
신에게 미로 속, 풀리지 않는 질문을 던져본다

성전 바닥에 엎드려 있던 
수사의 어깨에 햇빛 한 줄기

천년이 지나도
저 검은 웅덩이의 봉인은 풀릴 수 있을까

 

 



-계간 『시작』 (2017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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