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 나무 / 최을원
그곳에 목련 나무 한 그루 서 있었네
혼자서 찾아가던 그 나무 밑,
노래의 잔뼈들만 떨어져 쌓이고,
내 속 어딘 가에서 이끼만 무성히 자라 오를 때
우연처럼 바람이 불면
녹슨 목련꽃잎보다 더 빨리 지고 싶었네
노을 속으로 도시가 잠기어 가고
어둠이 천천히 고샅을 올라오면
지친 노래가 터덜터덜 그 길을 내려갔었네
그런 날 밤마다,
하숙집 낮은 창문을 끊임없이 두드리던
누군가의 취한 노래 소리
비릿한 젊음이 휴지에 쌓이고 나서야 잠들던
새벽녘, 꿈은 폐비닐처럼 찢겨
담벼락에 꽂힌 병 조각 끝에서 펄럭거렸네
지금도 내 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먼 곳에서 바람이 불면
화라락, 화라락,
꽃잎 떨어지는 소리 들리네
떨어진 자리마다 차가운 파문이 이네
몇 개의 낯익은 거리들이 순례자처럼 찾아오면
오래된 노래가 주섬주섬 대문을 또 나서네
시현실 2003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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