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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지 예술이 될수 있을까?--예술의 종말

o미술 세상

by 송강 작가 2021. 10. 1.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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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종말--무엇이든지 예술이 될수 있을까?
한국도슨트협회 강좌/강사 회장 김문기 작가


미술의 엔드게임(양식의 종말)이후 가치전달의 기호로써 미술의 과제

'작가는 자신이<제도>에 영향으로 변모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의무가 있다'

1964년Jean Paul Sartre가 노벨문학상을 거절하며 남긴 말이다.

정말 무엇이든지 예술이 될수 있을까?


제도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폭넓은 감성의 무한 범주와 탄력적 적용을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을것인가?


그러면 예술과 비예술의 구분은 어떻게 이루어 질까?

화장실의 변기와 예술로서의 변기가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외형적 구분 이외의 다른 구분은 가능할까?


제도론은 예술제도 형식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주장하였다
다원주의 미학은 제도를 넘어 서는 것을 예술의 한 형식으로 삼는다
예술의 정의 불가론이 주장하듯 예술과 비예술을 가르는 본질적 구분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분이 현실에 존재한다


인간과 침팬지의 차이는 수백만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인간과 침팬지의 염색채상 차이점 은1% 남짓뿐 이라고~인간 예술의 역사는 기껏 수만년전에 시작~


다원주의 예술론은 예술-비예술의 구분은 인정하지만 그개념이 고정된것이 아니고 다양한 요소에 의해 이루어지면 그 다양한 요소 또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계속 가변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어떻게 하나의 양식이 다른것보다 좋다고 할수 있을까?
당신은 다음주면 추상표현주의자나 팝아티스트 아니면 풍경화가 인물화를 그릴수도~그것도 무엇인가를 포기했다는 느낌을 받지않고 말이다 라고 말한 앤디워홀의 말에 다원주의 예술은 적극 동의한다.

 

이렇게 다원주의는 자유로운감성의 해방을 뜻한다 .특히 표현의 자유는 평가기준에 예속 되어야 할까? 다양성을 위해서는 평가기준을 부정하는 것이 바람직 하지만 이런 디렘머를 어떻게 해결 할 것인가


다원주의 평가기준은 하나가 아니고 여러 형태여야 할것이다.
이분법적 평가보다는 다분법적 평가로서 더 섬세하고 애정어린 공감의 평가기준으로 설득력을 가져야 할것이다.


'아서 단토'는 <예술의 종말> 이라는 도발적 수사를 통해 다양한 예술시대의 개막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런 다원주의 미학은 예술작품의 창작과 감상에 풍요로움을 제공해야 한다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
아서 단토의 종말 개념은 일원주의로 유행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개념이고

 

롤랑바르트의 작가의 죽음은 관객(감상자 컬렉터)의 부활을 뜻하듯

다양성과 수요자 중심으로 순수예술의 풍토가 바뀌어가고 있다는 의미 인지?

 

Fine Art도 결국은 디자인 개념처럼 타목적성(미 자체가아닌 실용적 성 가치수용)을 의식하며 쌍방항 소통의 가치를 겨냥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더많은 감상의 방식을 적절히 제안하는 일

그리고 그것을 통해 다양한 기치의 메세지를 실현 해야 함은 당연지사~

 

다원주의 미학의 유토피아 에서는
서로가 서로의 자유를 침해 하지않으면서 상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시장원리에 적응해야 하는 문화적 타협으로 인한 감성의 보편화와 상품화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결과 적으로 다원주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산물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오늘날 신자본주의 라는 이름아래

개개인의 다양한 개성을 현상적으로는
자유롭게 해주는듯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이윤창출이라는 논리어 적응하는 개성만이 살아 남을수 있게 한다


이 경제 원리에 살아남기 위해서 할수 있는 유일한 일은 소비시장에서 살아 남기이다.
생존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상황에서 다양한 삶의 방식과 다양한 양식의 예술이 꽃피게 되려면 자유로운 사유방식에도생존권이 보장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이시대의 철학은

창조하고 새로운 가치의 진정성을 찾아내야할

순수 목적은 접어 두고

소비가치에 예속되어

다양한 입맛고르기에 끌려간다면

그야말로 작가의 죽음

순수 예술의 종말이 논리적 근거를 갖는다는 뜻이다.

요즘 톨레랑스 (Tolerance)라는 단어가 다시 회자 된다;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인정하며 공존하는 관용의 정신이다

플라톤의 유토피아는 '덕'을 정의로 삼고

군주제의 덕은 충성,

군사독재의 덕은 명예이고

관료독재의 덕은 효율성 이고

다원주의 민주주의 에서는 관용이 덕이다


다양한 소수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인정받는 사회가 다원주의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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