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ff Koons
출생 1955년
쇼맨십과 뛰어난 자기 홍보 능력으로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포스트모던 예술가. 익숙하고 평범한 것들의 재창조를 통해 키치와 대중문화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고 큰 작업실에서 100여 명의 직원들과 함께 작품을 만든다.
제프 쿤스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 워홀의 팝 아트, 미니멀리즘 등의 장르를 넘나드는 작가로 평가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비싸기만 한 싸구려 예술 사업가라고 혹평하는 이들도 있는 등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하지만 생존 작가 최고 경매가 기록을 세 번이나 갈아치울 만큼 현대 미술에서 가장 주목 받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1955년 펜실베이니아에서 가구상인 아버지와 재봉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홉 살 때부터 이웃집에 사탕이나 장난감을 팔았고, 유명한 그림의 모작을 아버지 가게에서 파는 등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사업적 수완을 보여 주었다. 10대 시절에는 초현실주의 예술가 살바도르 달리를 우상으로 여겼다. 달리가 묵고 있던 호텔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고, 달리가 사망했을 때는 달리를 따라 머리를 붉은색으로 염색하고 콧수염을 길렀다.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와 메릴랜드 예술대학에서 공부했다. 이때 추상 표현주의 작품으로 유명한 에드 파슈케의 조수로 일하면서 영향을 받았다. 1977년 대학 졸업 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회원권을 판매하는 일을 맡았는데 1년 만에 주임이 될 정도로 회원권을 잘 팔았다. 1980년에는 증권 공부를 해서 월스트리트에서 증권 브로커로 활동하며 남는 시간에 작품을 만들었다.
주식투자로 큰돈을 번 그는 198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창작 활동에 뛰어들었다. 이때부터 앤디 워홀의 ‘공장(The Factory)’처럼 큰 작업실에서 여러 명의 직원을 고용하여 작품을 만들었는데 ‘새로운 것 (The New)’ 시리즈를 제작하여 미술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 시리즈 중에는 진공청소기나 바닥 광택제를 투명 장식장에 넣은 작품도 있었다. 이외에도 ‘평형’ 시리즈, ‘조각상’ 시리즈 등 시리즈 작업을 주로 했고, 이후에도 많은 시리즈를 만들었다. 기성품을 활용한다는 점과 팝 아트적인 성격으로 인해 마르셀 뒤샹과 앤디 워홀의 후예라는 평을 들었다.
1990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메이드 인 헤븐’ 시리즈를 공개하여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 시리즈는 포르노 배우 출신이자 이탈리아의 국회의원으로 유명한 일로나 스탈러(치치올리나)를 모델로 고용해 성행위 장면을 사진과 조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1991년 쿤스는 스탈러와 결혼했지만 1992년부터 따로 살기 시작해 7년여의 소송 끝에 1998년에 이혼했다.
1995년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줄 업체가 부도를 내면서 거액의 제작비를 날렸고, 이혼 소송비용으로 큰돈을 써 1999년 무렵 파산 직전까지 가는 위기에 몰렸다. 그래서 70명이 넘던 작업실 직원을 두 명만 남기고 모두 해고했다. 그러나 막대풍선으로 만든 강아지를 본떠 만든 강아지 ‘풍선 개’ 시리즈와 선물 포장을 형상화한 ‘축하’ 시리즈 등이 성공을 거두면서 재기에 성공하게 된다. 이후 풍선 개, 사탕, 하트, 부활절 계란을 형상화한 대형 미술 작품에 몰두했다. 현재 그의 작품들은 세계 주요 미술관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한국에도 그의 작품이 여러 점 설치되어 있다.
2008년 쿤스는 현대 미술가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베르사유궁 안에서 전시를 열어 전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이 전시를 주최하고 후원한 사람은 크리스티 경매 회사와 프랑스의 2대 명품기업 케링(구찌, 생로랑 등 보유)의 소유주인 프랑수아 피노였다. 피노는 쿤스의 작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어 의도적으로 작품가를 높이려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10년에는 알렉산더 콜더, 로이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등의 거장들이 참여했던 BMW 아트카 디자인에 참여했고, 갭(의류), 일리(커피), 키엘(화장품) 등 유명 브랜드와 협업에 참여했다. 2011년에는 자신의 작품을 구입한 신세계 백화점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현재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는 그는 데이미언 허스트 같은 동시대 예술가들과 영향을 주고받았다. 다소 뻔뻔스러워 보이는 자신에 대한 홍보, 대중들과 전 세계 유명 콜렉터들과도 친분 관계를 유지하면서 기존 질서에 구애받지 않는 작품 활동을 해왔다. 평범하고 흔한 소재를 선택해 재료를 바꾸거나 사이즈를 키운 형태의 작품이 많다. 현대 소비주의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동시에 소비주의에 편승하는 듯한 태도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