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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

o미술 세상

by 송강 작가 2020. 12. 22.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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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 Rothco

러시아 출신의 미국 화가로 미국 추상 표현주의, 색면 추상화가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이다.

본명은 마르쿠스 로스코비츠(Marcus Rothkowitz)였으나 유럽에서 나치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일반적으로 추상 표현주의 작가로 분류되지만 정작 자신은 추상 표현주의 작가로 분류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잭슨 폴록, 윌렘 드 쿠닝 등과 함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 미술을 이끌었다.

마크 로스코는 러시아 드빈스크(현재는 라트비아 영토)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13년 미국으로 이민하여 예일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러나 엘리트주의와 인종 차별에 실망하고 2년 만에 자퇴했다. 이후 연령, 학력의 제한 없이 누구나 등록해 그림을 배울 수 있는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 입학해서 미술을 배웠다. 이곳은 학교라기보다는 예술가 공동체에 더 가까운 곳으로 사실상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다.

이때 로스코는 유명 미술관과 갤러리를 돌아다니면서 미술을 공부했다. 특히 근대 유럽의 화가들인 마티스, 몬드리안 등의 영향을 받아 그들의 뛰어난 색감 표현을 자신의 작품에 녹여내고자 했다. 1928년 처음으로 전시회를 열었고 비평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등 소기의 성과를 얻었지만, 그뿐이었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생계를 이어 갔다. 1930년대에는 사실주의 스타일 그림을 그리면서 동시에 형태, 공간, 색채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

무명 화가로 살며 늘 생활고에 시달렸기에 부인과 끊임없이 다투었다. 그러다 결국 1944년에 이혼했는데 나눌 재산이 거의 없어서 부인은 로스코의 작품을 몇 점 가져갔다. 1945년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고 작품을 팔았는데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 가격이 고작 750달러에 불과했다. 로스코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에도 자주 등장하는 추상화가인 바넷 뉴먼, 클리퍼드 스틸과 오랫동안 친구로 지냈다. 이들과의 교류는 로스코가 자신의 색면 회화를 발전시키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1948년 2미터가 넘는 세로로 길쭉한 대형 캔버스에 경계가 모호한 색으로 이루어진 그만의 스타일을 처음 선보였다. 그는 감상자와 그림 사이의 영적인 교감을 중요시했고, 감상자를 압도할 만한 대형 캔버스만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미국 추상 표현주의 미술의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딜러 베티 파슨스의 도움으로 1946년 모티머 브랜트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는데 이 전시회가 성공을 거두면서 점차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여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식에 초대 받을 정도로 유명 인사가 되었다. 친구였던 바넷 뉴먼과 클리퍼드 스틸은 로스코가 성공한 이후 부르주아적 생활을 동경한다는 이유로 절교를 선언했다. 그들의 관계는 평생 회복되지 않았다.

자신의 예술 세계에 대한 평가와 오해에 극도로 민감했던 로스코는 말년에 자신의 심사를 통과한 고객에게만 그림을 팔았다. 1969년에는 미국 예술문학인 협회의 회원이 되었으며, 젊은 시절 무력감과 모멸감으로 자퇴했던 예일 대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8년 대동맥류로 인해 한동안 병원 신세를 졌으며, 1970년 슬럼프와 건강 악화를 비관하여 자신의 작업실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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