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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송태한 대표시 모음2

o송태한의 시와 시집

by 송강 작가 2020. 1. 26.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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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한 대표시 모음2


이슬방울처럼 / 송태한

 

풀잎 오선지 위

그렁그렁 목이 메인

한 소절 초록 악보

눈물 떨어져 번진

가슴 저 바닥까지

꽃등처럼 빛살 영롱한

노래 부를 수 있을까

 

잎새에 엉긴 시간처럼

그리운 몸짓 어디 있을까

볼과 입술 부비며

한 방울 새벽 별빛 머금은

시공의 짧은 포옹

눈멀도록 시린 사랑 하나

길섶에 적실 수 있을까




사물의 심장 /송태한


새와 벌레뿐 아니라

나무와 꽃들

문갑과 시계에 이르기까지

한낱 사물에게도 심장이 있다

한 발 더 가까이

가만가만 손 짚어

허리 숙이면 보인다

귀 대어 보면 물기 어린

고동소리 들린다

허공을 포르르 건너는 멧새처럼

계곡을 동동걸음 치다 잠시

발 담그고 노는 냇물도

저만의 숨결 갖고 있다

낮은 들녘의 패랭이꽃도

혈관 은밀한 잎사귀 틈에

그리움 등불 밝히는

팥죽처럼 끓는 심장

한 단지 품고 있다

매운 밤바람에도 꺼지지 않는

밤하늘 따스운 별들처럼

온몸 짜릿하게 심장 뛰고있다




약비 /송태한 

남산 턱밑에서 땅끝 발목까지
모시 두어 겹 두른 황사를 좇아
 
갈라진 저수지 등짝으로
숲의 쇄골 아래로
 
담뱃잎 토란잎 어르랴
흙밭 가슴에 안기랴
 
불면으로 탄 입술
그녀 속눈썹 위에 약비 내리다




문손잡이 /송태한 

 

돌쩌귀 닳도록 넘나들던 문지방에 홀로 남아

 

심장 뛰던 그리움과 가슴 찡한 작별의 틈새에 박혀서

 

사랑의 상흔처럼 문손잡이는 그은 벽을 움켜잡고 있네




꼬막/송태한

 

올록볼록

접시 개펄 속으로

빠져드는 손과 발

차밭 주름처럼 비탈진

골과 이랑 껍데기마다

다닥다닥 묻어나는 해조음

까슬한 두 입술과

금단의 속살

마침내

달게 애무하노니

입 안 가득

파도만큼 부서지는 너의

육즙 향내

헤어날 수 없이 질퍽한

맛의 진창




거미·1 /송태한                  

    

내 영혼의 그늘 가

무관심의 서랍 속 혹은

일상의 현관 뒤켠에

제 몸 감추고 산다

벼랑을 타고 끈끈한

극세사 실을 던져

방사형 터를 꾸린다

주소도 모르는

신경세포 외진 동굴 어디쯤

가구 한 점 거울마저 없이

좁은 쪽문에 걸쇠 걸고

꿀맛 같은 게으름과

갈증을 돌돌 말아 빨며

마음 구석에 알을 슬어 놓는다

먼지 덮인 눈썹 아래 훅,

쥐색 그물 뿌린다




억새밭 /송태한

  

그대 처음 만난 날짜

어떤 기념일도

이젠 손꼽지 않겠습니다

손 안에 맴도는 문자 메시지

문득 비치는 인파 속 모습에도

눈 딱 감기로 했구요

지붕 낮은 카페의 선율

비 개인 물가의 해거름

깔깔대던 웃음소리까지

마침내 뇌리에서 지우겠습니다

가슴 떨리는 이름 석 자로

더 이상 울먹이지 않고

함박웃음마저 꾹 참을 수 있건만

나도 몰래 찾아드는 꿈결

억새밭 사잇길 첫 키스는

바람 눕는 가슴 속 뒤란에

와인처럼 입 막고 쟁여두겠습니다




광화문 광장 /송태한


난세의 바다를 호령하던 장군이

세종로 사거리에 꼬박 서서

생각에 잠겨있다

몰려든 인파와 함성소리

그 해의 풍랑 일 듯 심상치 않다

 

목숨을 바꾸고 지킨 땅

승전의 북소리 깃발 대신

차량의 매연과 소음

현기증 이는 움직임 광장에 가득하다

  

역사에 우뚝한 23 23

무수한 적군을 무찌른 바다

왜군의 함선과 주검 묻은 그 물결 속에

스스로 제살붙이 수장함이 웬 말인가

 

경복궁 문밖까지 나와 앉은

대왕은 저 숨막히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가

용상 위 펼쳐든 서책엔 길이 있는가

  

달려가 쩌렁한 목청으로

그 배 멈추라고 큰 칼 뽑고 싶지만

남은 판옥선 순시선 띄워

물살에 좌초한 젊은 목숨 구하라고

날 선 명령 어서 내리고자 하건만

  

오백 년 세파에 입술은 굳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한산도 달 밝은 밤 수루에서 읊던

애 끓는 시조만 입가를 맴돈다




작약 /송태한

 

춤춘다

짙은 향내 흩뜨리며

얼기설기 추켜올린

허공의 치맛자락

배배 꼬인 등나무 그늘 앞

기우뚱한 빛살 무대

맥문동 달개비 비비추 원추리

흥에 겨워 들썩거리고

넋 나간 사내처럼 슬며시

스치다 걸터앉은 바람

이파리 흔들어 갈채 보낸다

강약 장단에 가쁜 숨결

플라멩코 탱고 캉캉 부채춤

온종일 식순 끊이지 않는

꽃단장 무희들의 한 마당

오뉴월 꽃밭




곶감 /송태한

 

마음의 껍데기

훌훌 벗어버리고

심장 속 진심을 고백하든지

서역의 어느 수도승처럼

제 가진 것 일체 내려놓고

알몸으로 수행길 나선다면

맨 처음 햇살 앞에

주름진 허물 같은 번뇌

말끔히 털어낼 수 있을까

겨울나무 가지처럼

뼈만 앙상한 욕망

톡톡 분지를 수 있을까

한 치의 추억과 명분마저

불티처럼 스러져 가는

고통의 모서리

눈물 송송 맺힌

윤회의 외줄 끝에서

향긋한 넋으로 비로소

다시 깨어날 수 있을까




황사 도시 /송태한

 

1.

여물을 되새김질하는 누렁소처럼

사람들은 입가에 흘린 거품을 혀로 닦아내며

날마다 우물우물 황사를 씹어 삼킨다

 

2.

이른 아침부터 도시는

굶주린 이리떼처럼 밤새 물을 건너온

황사의 아가리에 목덜미 물린 듯 불편한

숨을 몰아쉬고 거친 발톱을 피한

행인들은 서둘러 지하 계단으로 숨어든다

 

3.

미모의 기상예보관은 연일 TV와 빌딩의

전광판을 드나들며 미세먼지 주의보에

외출 자제를 당부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여자들은 공원에서 커다란 마스크 쓴 채 수화를 하고

벤치의 노인들은 습관처럼 뿌연 안경알을 닦는다

4.

태양마저도 황사 속에선 그저 나약하고

창백한 안색의 달빛이나 다름이 없다

남자들은 먼지 덮인 현수막처럼

갓길과 육교 난간에서 휘청거리다

잠시 날씨가 개었으나 여전히 가쁜 호흡으로

황사의 내장 같은 하천과 시가지 길목을 맴돌고 있다





 

모기 연대기 /송태한

 

저의 사랑은 아이러니

혹독한 대접에 종종 줄행랑도 놓지만

그것마저 끈적한 가문의 내력

땀 내음 향그러운 살가죽 밑

숨 막히는 의식의 시간

질펀한 흡혈의 습관 속

파르르 떨리는 더듬이

당신을 찾아나서는 노정은 흡사

전쟁터와 다름 아니죠

정복의 순간 감격에 겨워

정으로 비각을 새기는 제왕들과 달리

가느다란 주둥이로 남기는 저희 문장紋章

송구하게도 붉은 반점

아득한 쥐라기 공룡이나 열사의 낙타

사기史記 속 성현에 이르기까지

어느 누구 예외가 없죠

끊을 수 없는 중독에 쓸모

없는 듯 있는 듯 새리새리

대대로 물려받은 어둠의 실세

도처에 둥지를 튼 실존




작은 간증 /송태한

 

도맛소리

사골국 끓는 소리

프라이팬 지글거리는 소리는

주방의 합창입니다

한 그릇 따스운 고봉밥에

물김치 생선조림 별별 나물 어울린

한 끼 밥상은 반짝이는 당신의 기도입니다

한껏 베풀어 주시고 남겨진

주름진 손마디

배롱나무 닮은 몸집은

마지막 버팀목이요

가슴속 음각으로 새겨져 아린

기억은 눈부신 구원입니다

길조심하거라

가녀린 한 마디 말씀조차

방죽 같은 나의 방패입니다

쓰시던 소품마다 손때가 묻어

어머니 머물던 거처는 마침내

가슴 저린 작다란 성지입니다




빗방울 하나 /송태한

 

빗방울 하나 애기싹 발등 닦네

 

자두 꽃눈 하나 쥐었던 손마디 펴네

 

민들레 풀씨 손목 잡고 샛바람 한 필 마실가네

 

지나치던 눈길 하나 달래 속살에 흘리네

 

무지개 틈에서 물방울 하나 문득 옷 갈아입네

 

봄 내음 한 움큼 짐승처럼 가슴골 헤집네

 

젖멍울 오르듯 톡톡 그리움 불거지네





눈 택배 /송태한

    

달동네 백사마을이라 불리는

중계동 산 104번지

얽힌 골목으로 눈발 새어들더니

가가호호 대문 밖 조막돌도

허기 끝 눈 선물에 배부르다

구름 우체국에서 손수 부치신

반송할 도리 없는 택배 꾸러미

사각 운송장 위에 낱낱이

군고구마 장수 오씨

구두 수선공 곽씨

수원댁 파지 할머니

언덕바지 수취인 주소 각별하여라

사양하고 뒷걸음질해도

개미 떼 줄서듯 찾아드는

바짓가랑이 된바람처럼

살얼음에 발목 잠긴 갯돌처럼




연등 /송태한

         

내 이름자 귀퉁이에

촛불 하나 들여놓아

때 묻은 시름 한 잎 울다 슬어라

 

인연의 그물 밖

간절한 기도 적어 드리울 제

실매듭 적시는 뜨거운 눈물 타고 흘러

 

해거름 가슴에 연등 밝히니

동트는 줄도 모르게

어리석음 하나 살핏 잠에 들어라




발뒤꿈치 /송태한

 

해마다 겨울철이 오면

내 발뒤꿈치엔 각질이 자란다

두껍게 자란 살 껍질이 협곡처럼 갈라져

피딱지마저 비칠 때면

한 발 내딛기조차 수월치 않다

미끄러운 빙판길 조심하랴

발바닥 사정 헤아리랴 이미

여러 해 몸에 기생하는 이 증세는

숨죽여 살아왔던 살갗의 반란처럼

이래저래 거동을 애먹인다

긁어 털어내고 깎아내도

다시 그 자리에 들어앉는 낯선 표피층

모래 먼지뿐인 사막지대 속에서

끝내 살아남은 절지류처럼

굳은살에 만져지는

금강송 껍질처럼 속 깊은 내력

삼엽충 화석 같은 질긴 목숨들

나무초리 까부라지고

높바람이 전갈처럼 꼬리 세운 겨울엔

내 몸을 버텨온 차가운 발끝에

겨우살이 하얀 각질이 핀다




휴가 /송태한

 

저에게 오세요

땀에 절은 이불 뒤집어 쓰고

늑장 부리던 그대

오솔길 끄트머리 어렴풋한

징검다릴 건너오세요

해거름 하사분한 눈썹 그늘에

바닥까지 잠겨 보세요

오후가 지나도록 그대는

그은 낯빛으로 싸다녔죠

케논 변주곡의 바이올린 화음

그대에게 부어 주는 시종이 되려구요

먹빛 울음 딱지 떼어내고서

명지바람 새어드는 해먹에 얼굴 밀고

구름처럼 안겨 드세요

한적한 저의 주소를 들고

자근자근 맨발로 걸어와

허브 향 간질이는 풀잎 가슴팍에

해종일 나뒹구세요

물안개 흐르는 물가의 새처럼

더운 발 먹먹한 가슴

흠뻑 담가 보세요




치과 일지 /송태한

 

호명되는 순간을 기다리며

살얼음 깨어지는 저수지의 적막을 온몸으로 맞는 환자들

송곳과 메스, 주사바늘이 부르는 긴장

통증은 그물망처럼 조밀하고 앙칼지다

좌판의 생선만큼 벌어지는 입

누구는 마른 침을 거푸 삼키고

어떤 이는 한껏 주먹을 움켜쥔다

주름진 미간에 메마른 입술

턱뼈와 입가를 어루만지는 습성

푸른 이끼가 카펫으로 덮인 바닥 구석

불안으로 일렁이는 물 그늘 가에서

웅크린 환자들은 저도 모르게

유사 어종의 빛깔과 무늬를 띠고 있다

 

구강과 비강 사이를 드나드는 통증

끈적이는 습기로 허공은 언제나 흥건하다

느낌표처럼 수면에서 톡톡 튀는

찌 끝을 지켜보는 간호사의 눈매

버드나무 그림자 따라 흐느적거리며

어느 틈에 눈앞에 다가온 낚싯바늘

뒤집힌 의문부호와 마주칠 때마다

망막으로 번지는 거미줄 같은 파문

비늘 돋는 소름에 눈빛조차 파리하다

입술에 바늘을 물고 보이지 않는 낚싯줄에

쭈욱 당겨져 수술 의자에 올라가 눕는다


마스크로 입과 표정을 가린 의사

엑스레이 화면의 명암을 훑어보며

환자의 치열과 습성까지 꿰뚫는다

조류의 변화를 읽는 낚싯배 선장이

물고기 낌새를 알아채듯 환자의 동태를 훤히 주무른다

금속제 수술집기를 만지작거리던

라텍스 장갑을 낀 희멀건 손으로

분홍 점막의 잇몸에 칼날 긋는 순간

곤혹감에 번득이는 관절의 적색등

잡혀 온 생선이 그러하듯 환자는

눈 감은 채 온몸 지느러미를 버둥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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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한 시인

시집: 『 우레를 찾다(2019)』,퍼즐 맞추기(2016)』,2인 시집(1983) 등

연암문학예술상, 한국문학신문 문학상, 시와표현 기획시선 공모당선

한국문협문인저작권옹호위원, 국제펜한국본부 회원,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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