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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한 대표시 모음

o송태한의 시와 시집

by 송강 작가 2020. 1. 25.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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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송태한 대표시 모음

 

식물도감/송태한

빼곡한 책시렁에 갇혀있던

큼직한 책을 펼쳐 들면 불쑥

숨어있던 꿀벌이 앵앵거린다

책갈피 잎사귀 틈에서 살며시

모시범나비 날개를 편다

범부채 벌개미취 노루오줌 광대수염

가슴에 이름표 단 유치원생들처럼

앙증맞은 꽃들이 줄지어 얼굴 내밀고

산등성이 구름 몰려가듯

계절이 성큼 건너간다

상수리나무 타고 내려온 다람쥐가

총총걸음으로 책장을 질러간다

식물도감 마지막 쪽

제철 만난 수목원 귀퉁이엔

수줍은 뱀딸기처럼 어느 틈에

꿈꾸듯 나도 기대앉아 있다

황태/송태한

  

 

숲이 쥐 죽은 듯 동면에 들 때

나는 비로소 잠에서 깨어난다

 

가진 것 없는 알몸에

눈 속에 엎드려 숨을 고르고

덕장 사이로 얼었다 녹은 살점

깃발인 양 나부낀다

 

추억은 혹한에 뼛속까지 얼어붙고

못다 한 사랑도 살결이 터서

나무지게 발채 같은 허공에

꽃잎처럼 허물 띄우면

 

가시가 드러나는 신열身熱의 고통

이름도 넋도 높바람에 말라

시래기처럼 바싹 야윈 한 오라기 꿈에

남은 건 반짝이는 금빛 속살뿐

곶감/송태한

 

 

마음의 껍데기

훌훌 벗어버리고

심장 속 진심을 고백하든지

서역의 어느 수도승처럼

제 가진 것 일체 내려놓고

알몸으로 수행길 나선다면

맨 처음 햇살 앞에

주름진 허물 같은 번뇌

말끔히 털어낼 수 있을까

겨울나무 가지처럼

뼈만 앙상한 욕망

톡톡 분지를 수 있을까

한 치의 추억과 명분마저

불티처럼 스러져 가는

고통의 모서리

눈물 송송 맺힌

윤회의 외줄 끝에서

향긋한 넋으로 비로소

다시 깨어날 수 있을까

시간의 잔등 /송태한

  

 

내 마음 가장자리엔

하늘이 낮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하루하루 땀내 얼룩진

대낮에는 구름 쉬다 가고

어느 틈에 뛰쳐나온 별과 달

해 지면 도르르 구르고

노을 붉은 막 내릴 때마다

무대 등장인물 바뀌는 곳

내 마음 귀퉁이엔

해변이 맞닿아 있습니다

갯벌 머드팩 즐기는 게와 햇살

밀려오는 모래 거품이

시간의 잔등 긁어주는 곳

어질어질한 마음 속 한복판 보다

산들바람 빈둥대는 하루의 뒤꼍에

내 눈길 내내 기웃거립니다

시간의 모서리/ 송태한

속눈썹 틈 일렁이던 졸음이

새벽 어스름에 떠밀려가는

 

계곡 얼음이 발목 아래서

투명 물방울로 건너뛰는

 

씩씩대는 땅벌레처럼 두 팔로

쪽파 새순이 흙을 뒤엎는

 

흰나비 유충이 꽃눈에 기대어

연초록 햇살 허물 갈아입는

 

굴뚝새 재재거리며

일찌감치 하루 일감 펼쳐놓는

 

유리 전구처럼 부푼 도라지 봉오리

다섯 조각 빛으로 깨어지는

 

깨알같은 물방울들 허공을 기어올라

무지개 걸게그림 내다거는

우레를 찾다/송태한

 

 

구름 모퉁이 뒤에서

목 고르는 소리만 들어도

당신이 날 부른다는 것

이내 예감하죠

층층 바람길 허공을 가로질러

구름 계단 성큼 밟으며

수백 리 외진 땅 언저리에서

당신이 날 찾아 헤맬 때

남몰래 심장은 쿵쾅거리죠

온몸 흠뻑 젖도록 감동 주고

머리칼부터 발끝까지 저리도록

불현듯 다가와 감전시킬

전율 같은 당신의 손끝

등줄기에 각인된 어둠 속 사랑

아무도 우릴 못 알아봐도

꿈꾸듯 목덜미 어루만지며

빗줄기가 잠을 깨우면

굴뚝 위 곧추앉은 피뢰침처럼

까치발 딛고 어둠 속으로

불 켜고 다가올 당신을 어느덧

내가 되찾고 있죠

장미의 노래 / 송태한

그냥 지나치렴

무심히 스쳐가는 길목에서

남모르게 서러워하지 않을

수다스런 동무들의 웃음다발이거나

입가에 맴도는 노랫말이 되어 주마

 

귀 기울여보렴

햇살 고인 뜨락에서

식물학자인 양 눈을 깜빡이며

잠시 들여다보렴

나의 꽃잎과 꽃술

그 사이로 배어 나오는

한 오라기 팽팽한 정적 끝의

서리 같은 기도

 

이제 만져보렴

마법 꽃물을 부어 빚은 듯

사무치게 고운 꽃잎과

허공에서 파르르 떨던 가시까지

백지 안에 한 아름 엮어 그대여

상처 베인 우리들의 청춘과

아버지의 여윈 초상화 곁에

고요히 내려놓으렴

가슴 속 파도처럼 일렁이는

장미의 꽃말에 붉게 취했다면

고인돌 /송태한

 

 

나 떠나가면

오직 돌 하나만 남기리

서슬 푸른 세상사

돌덩이 같은 살점 이제 내려놓고

봇짐에 싼 근심 풀어버리고

낯 붉은 욕망도 발 아래 묻고서

모양도 빛도 없는

서늘함 속으로 길 나서리

좀이 퍼진 기억

한 올 미련일랑 소슬바람에 쥐여 주고

해가 찔러주는 연서

구름이 떨궈 놓은 눈물 사연마저

등 돌리고 귀로 흘리며

포대기 속 아이처럼

산만치 무거운

눈꺼풀 누르는 졸음에 겨워

천년 그늘 채우리

허수아비 / 송태한

비바람 가시그물에

옷이 긁히어 해져 날려도

팔 벌려 숨김없이

내 마음 죄다 내어주기

외발뿐인 발꿈치로 홀로 서서

별이 뜨고 해가 져도

혹여 쓰러지지 않기

한걸음도 섣불리 물러서지 말기

초록 벼이삭 금싸래기로 누울 때 까지

깡통풍경 연주하기

지푸라기뿐인 살점

땡볕에 터져 나오고

각목등뼈가 삭아 갈라져도 왼종일

네가 머무는 궁전 한 곳만 바라보며

칼 찬 장군처럼 지키고 서 있기

가을볕에 여윈 내 그림자

오직 너 하나만을 위해

마른 십자가로 남을 때까지

퍼즐 맞추기 /송태한

  

 

오전엔 사무실 내근

찬바람 새어드는 출입문 앞

서류 파일 어질러진 책상 모니터와 씨름하다

점심 때우고 오후엔 관내 출장 다녀오기

수첩에 빼곡한 하루를 마감하고

비공식 저녁 일정은 직사각 승객 시루 속

지하철 한 귀퉁이에 기대어 놓기

부르튼 짜장 면발이 된 퇴근길 몸에

머릿속 기억은 분실물 투성이

듬성듬성 이 빠진 콜라주

정신마저 쓰러지지 않게 손잡이에 꼬옥 묶어

촘촘히 세워 놓았다가

내리는 역에선 밀려나갈 때 방향주의

횡단보도 신호등 앞에선 우선멈춤

재건축 대상 주공아파트 오층 계단을 한 차례 쉬고

올라가 현관문 비번 눌러 열고

비좁은 화장실로 데려가

얼굴과 손발 비누로 박박 씻겨서

옥돌 매트 깔린 레고 블록 침대

아내 옆 빈 칸에 가로누이고

좌우 테두리 가지런히 맞추어

내 몸뚱이 가까스로 미라처럼 끼워 넣고

눈꺼풀 지그시 눌러 감겨놓은 뒤

사각 방 무대 위 하루의 조명을 일제히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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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한 시인

시집: 『 우레를 찾다(2019)』,『퍼즐 맞추기(2016)』,『2인 시집(1983)』 등

연암문학예술상, 한국문학신문 문학상, 시와표현 기획시선 공모당선

한국문협문인저작권옹호위원, 국제펜한국본부 회원, 서양화가

 

 

T스토리 /송강 작가 온라인 갤러리
https://lastree.tistory.com/

*T스토리 /송강 작가 온라인 갤러리 
여러분들  요청에 힘 입어
전면적으로 개편했습니다
많은 관심/방문 기대합니다
건강하시구요~^^
-송태한 올림

 

송강 작가 온라인 갤러리

서양화가 송강 작가의 온라인 갤러리 입니다 시인 송강 송태한으로도 활동 중입니다 미술과 문학 관련 블러그 입니다 반갑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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