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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한 시인/ 시집 『퍼즐 맞추기』시 모음

o송태한의 시와 시집

by 송강 작가 2018. 3. 25.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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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한 시인/ 시집 『퍼즐 맞추기』시 모음


      장미의 노래                                   
그냥 지나치렴 무심히 스쳐가는 길목에서 남모르게 서러워하지 않을 수다스런 동무들의 웃음다발이거나 입가에 맴도는 노랫말이 되어 주마   

 

귀 기울여보렴햇살 고인 뜨락에서식물학자인 양 눈을 깜빡이며잠시 들여다보렴나의 꽃잎과 꽃술 그 사이로 배어 나오는 한 오라기 팽팽한 정적 끝의 서리 같은 기도 

 

이제 만져보렴마법 꽃물을 부어 빚은 듯 사무치게 고운 꽃잎과 허공에서 파르르 떨던 가시까지백지 안에 한 아름 엮어 그대여 상처 베인 우리들의 청춘과 아버지의 여윈 초상화 곁에 고요히 내려놓으렴가슴 속 파도처럼 일렁이는 장미의 꽃말에 붉게 취했다면

 

 

 

 

 

황태

   

숲이 쥐 죽은 듯 동면에 들 때

나는 비로소 잠에서 깨어난다

 

가진 것 없는 알몸에

눈 속에 엎드려 숨을 고르고

덕장 사이로 얼었다 녹은 살점

깃발인 양 나부낀다

 

추억은 혹한에 뼛속까지 얼어붙고

못다 한 사랑도 살결이 터서

나무지게 발채 같은 허공에

꽃잎처럼 허물 띄우면

    

가시가 드러나는 신열身熱의 고통

이름도 넋도 높바람에 말라

시래기처럼 바싹 야윈 한 오라기 꿈에

남은 건 반짝이는 금빛 속살뿐

 

 

 

허수아비

 

비바람 가시그물에

옷이 긁히어 해져 날려도

팔 벌려 숨김없이

내 마음 죄다 보여주기

외발뿐인 발꿈치로 홀로 서서

별이 뜨고 해가 져도

혹여 쓰러지지 않기

한걸음도 섣불리 물러서지 말기

초록 벼이삭 금싸래기로 누울 때 까지

깡통풍경 연주하기

지푸라기뿐인 내 살점

땡볕에 터져 나오고

각목등뼈가 삭아 갈라져도 왼종일

네가 머무는 궁전 한 곳만 바라보며

칼 찬 장군처럼 지키고 서 있기

가을볕에 여윈 내 그림자

오직 너 하나만을 위해

마른 십자가로 남을 때까지

 

 

 

이사를 하며

  

이사를 하며 나는 몇 번을 놀랐다

저 많은 이삿짐들이 어디서 튀어나왔을까

가끔은 진귀한 골동품을 찾아낸 듯 신기해하며

이것저것 만지작거리고 문득 웃음을 흘렸다

바닥을 긁던 밥솥처럼

오랫동안 정들었던 살림이 있는가하면

한 번도 못쓰고 묵혀 둔 낚시용품까지

한때는 모두 애지중지 아꼈던 것들

없으면 못살 것 같던 마음들이

창고와 벽장 틈에서 마술 상자처럼 쏟아져

사다리에 실려 트럭으로 옮겨 타고 있었다

어떤 물건은 이산가족 만난 듯 반가워도 하고

때로는 가구 뒤편에서 빛바랜 책 묶음이

아직 살아있다고 외마디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두꺼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잠들어 있다가

손대면 다시 눈을 깜빡이는 추억처럼

소싯적 핏대 세우며 굽히지 않거나

청춘만큼 절절했던 모나고 날 선 신조까지

이제 진정 송두리째 내려놓거나

내 몸으로부터 멀찌감치 작별해야할

헐고 묵은 짐, 버려질 이삿짐이 되어버려

나는 세간 사이에서 남몰래 콧마루가 시큰해졌다

 

 

 

시간의 모서리

 

속눈썹 틈 일렁이던 졸음이 

새벽 어스름에 떠밀려가는

 

계곡 얼음이 발목 아래서

투명 물방울로 건너뛰는

 

씩씩대는 땅벌레처럼 두 팔로

쪽파 새순이 흙을 뒤엎는

 

흰나비 유충이 꽃눈에 기대어

연초록 햇살 허물 갈아입는

 

굴뚝새 재재거리며

일찌감치 하루 일감 펼쳐놓는

 

유리 전구처럼 부푼 도라지 봉오리

다섯 조각 빛으로 깨어지는

 

깨알 같은 물방울들 허공을 기어올라

무지개 걸개그림 턱 내다거는

 

- 송태한 시집 『퍼즐 맞추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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