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하며
송강 송태한
이사를 하며 나는 몇 번을 놀랐다
저 많은 이삿짐들이 어디서 튀어나왔을까
가끔은 진귀한 골동품을 찾아낸 듯 신기해하며
이것저것 만지작거리고 문득 웃음을 흘렸다
바닥을 긁던 밥솥처럼
오랫동안 정들었던 살림이 있는가하면
한 번도 못쓰고 묵혀 둔 낚시용품까지
한 때는 모두 애지중지 아꼈던 것들
없으면 못살 것 같던 마음들이
창고와 벽장 틈에서 마술 상자처럼 쏟아져
사다리에 실려 트럭으로 옮겨 타고 있었다
어떤 물건은 이산가족 만난 듯 반가워도 하고
때로는 가구 뒤편에서 빛바랜 책 묶음이
아직 살아있다고 외마디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두꺼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잠들어 있다가
손대면 다시 눈을 깜빡이는 추억처럼
소싯적 핏대 세우며 굽히지 않거나
청춘만큼 절절했던 모나고 날 선 신조까지
이제 진정 송두리째 내려놓거나
내 몸으로부터 멀찌감치 작별해야할
헐고 묵은 짐, 버려질 이삿짐이 되어버려
나는 세간 사이에서 남몰래 콧마루가 시큰해졌다ㄴ
구민신문/송강작가 그림과 시
https://guminnews.tistory.com/m/1129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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