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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데 고야

o미술 세상

by 송강 작가 2021. 5. 3.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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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은 지나칠 정도로 독실한 가톨릭 국가였다. 따라서 ‘예술의 자유!’ 운운하며 여인의 나체를 함부로 그리는 일이 쉽지 않았다. 잘못했다가는 종교재판소에 끌려가 수모를 받기 일쑤였고, 심지어 국외로 추방되기도 했다. 유럽 각 지역에서 신화를 빌미로 한 여인의 누드, 예컨대 알몸의 비너스가 판을 치는 동안 스페인에서만큼은 벨라스케스의 〈거울을 보는 비너스〉 정도만 간신히 ‘누드화’의 한 칸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나마 벨라스케스의 비너스는 등만 내밀고 있는 정도이다.

벨라스케스 〈거울을 보는 비너스〉

따라서 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는 스페인 회화사에서 상당히 특별한 모험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누드는 비단 스페인뿐 아니라 서양 회화사에서도 보기 드문 ‘노골성’이 있다. 서양 누드 속 여자들은 자신을 바라보게 될 남성 감상자들이 느낄 ‘민망함’을 배려해 늘 시선을 돌리고 있기 마련이다. 〈옷을 벗은 마하〉의 이런 뻔뻔한 시선은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에서나 간신히 볼 수 있을 뿐, 아예 두 팔을 머리 위로 들어올려 마치 작정하고 다 보여주는 노골적인 누드는 고야가 살던 시대만 해도 찾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티치아노의 누드는 사람의 몸을 그린 것이 아니라, 여신의 몸을 그린 것이라는 핑계라도 있어 도덕적 검열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티치아노 베첼리오 〈우르비노의 비너스〉

기존의 누드화들은 대부분 신화 속 존재들을 그리고 있다. 물론 종교화에서도 누드가 심심치 않게 발견되긴 하지만, 대부분 ‘이야기 전개상’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었다. 드물게 실제 여성의 누드를 그린 그림도 발견되지만, 대체로 화가가 자신의 연인을 담아 개인적으로 보관한 것이거나 습작용에 불과했다. 그러나 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는 스페인 저잣거리를 활보하는 멋쟁이 여자 한량 ‘마하’가 그야말로 별 이야깃거리 없이 나체로 누어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게다가 비너스 등 여성 누드화의 단골들은 인간이 아닌 상상 속의 인물(여신)들로, 9등신 8등신 등 완벽한 몸을 가지고 있다. 대체로 그들은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의 부활이라는 르네상스의 정신을 타고 그려지기 시작했고, 따라서 화가들은 그 모델을 완벽한 비율의 과거 조각상에서 찾았다. 체모는 당연히 그리지 않았다. 심지어 여성의 머리카락마저 남성들의 경건한 마음을 들쑤신다고 여기던 옛사람들에게 차마 체모를 드러내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체모는 여인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에 흠으로 보이기도 했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 〈옷을 벗은 마하〉

고야는 그 금기들을 뛰어넘었다. 여신도 아니고 완벽한 비율의 조각 같은 몸도 아닌 ‘그냥 진짜 여자’ 마하. 게다가 관람자를 빤히 쳐다보는 ‘도발적인 시선’. 옷을 벗은 마하는 제대로 말하자면 ‘nude(고상하고 이상적인 신체로서의 몸)’라기보다는 날것 그대로의 알몸, 즉 ‘naked’의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그림의 주문자는 카를로스 4세 시절 왕비의 애인이자 왕을 대신해 나랏일을 쥐락펴락하던 재상 마누엘 고도이였다. 고야가 발가벗은 여자의 몸을 그리면서도 종교재판소의 매 같은 눈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주문자의 ‘권력’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도이는 고야에게 같은 여인을 옷을 입은 모습으로도 그리도록 했다. 짐작컨대, 고도이는 뭘 좀 아시는 분들에겐 〈옷을 벗은 마하〉를, 화들짝 놀라거나 욱하고 호통칠 만한 꽉 막히신 분들에겐 〈옷을 입은 마하〉를 보여줄 작정이었던 것 같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 〈옷을 입은 마하〉

카를로스 4세와 고도이가 쫓겨나고 페르난도 7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고도이가 소장했던 작품들이 대거 수집되는데, 그들 중에는 당연히 이 작품들을 비롯해 벨라스케스의 〈거울을 보는 비너스〉도 함께 있었다. 고야는 뒤늦게 〈옷을 벗은 마하〉로 인해 종교재판소의 호출을 받게 된다. 다행히도 고야는 페르난도 7세의 신임을 받던 화가였기에 처벌은 면할 수 있었다.

한편 고야의 이 그림이 대체 누구를 모델로 한 것인가에 대한 호기심은 최근까지도 사람들의 수다용 먹잇감이 되고 있다. 그중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가 바로 알바 공작부인이다. 고야는 스페인 실세 가문 알바 공작 부부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그녀와 만나게 되었다. 왕비보다 더 직함이 많을 정도로 지체 높은 알바 공작부인은 남편이 죽자 마드리드를 떠나 남부 안달루시아의 별장으로 갔는데, 고야도 그녀를 따라가 몇 달을 함께 머물렀다고 한다. 고야는 마하 복장 차림의 그녀가 손가락으로 바닥에 새긴 글자, ‘오직 고야(Solo Goya)’를 가리키고 있는 장면을 비롯해 그녀의 초상화를 자주 화폭에 담았다. 이 때문에 둘의 관계가 심상치 않았을 거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그러나 둘의 신분 차이로 미루어보아 두 사람의 관계는 고야의 일방적인 짝사랑이었거나 설사 둘 사이에 심상치 않은 모종의 사건이 있었다 해도 고야는 알바 부인 정도의 권력자가 거느릴 수 있는 ‘심심풀이 정부들’ 중 하나에 불과했을 거라는 말이 있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 〈알바 공작부인의 초상〉

많은 사람이 이 그림의 모델을 알바 공작부인이라고 단정하지만 정작 알바 공작의 후손들은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공작부인의 유해까지 파내는 소동을 벌였다. 뜻밖에도 유해 검시관들이 그림 모델이 알바 공작부인과 비슷하다는 의견을 내놓는 바람에 또 한 차례 격론이 이어지기도 했다. 사실 고야가 그림을 그릴 때 공작부인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게다가 이 그림들이 재상 고도이의 주문을 받아 그린 것이라면 고도이의 집안과 정치적 숙적 관계에 놓여 있던 알바 집안 여자를 고야가 굳이 모델로 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모델은 고도이의 또 다른 연인 페피타 투도라는 여성이라는 소문도 있다.

어쨌거나 현재 이 두 작품은 나란히 전시실 벽에 걸려 있어서 “저 옷을 벗으면 어떤 속살이 펼쳐질까?”를 상상하는 관람자들의 관음증적 욕구를 후련하게 해소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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