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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뒤상//송강 온라인갤러리

o예술가의 삶과 작품

by 송강 작가 2021. 1. 4.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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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뒤상
프랑스 화가, 조각가, 문학가, 체스선수

마르셀 뒤샹은 일상 속의 오브제를 작품으로 탈바꿈시키면서 미술에 대한 전통적인 선입견에 도전한 현대 미술의 혁명가이다. 변기에 사인을 한 〈샘〉과 모나리자의 엽서에 수염을 그려 넣은 〈L.H.O.O.Q〉 등 일견 엉뚱하고 부조리해 보이는 그의 작품들은 미술품의 생산과 유통에 중대한 고찰을 던지며, 누구도 짐작하지 못한 쪽으로 현대 미술의 방향을 전환시켰다.

뒤샹은 1887년 7월 28일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 블랭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공증인이었으며, 외할아버지는 해운업자인 동시에 판화가로 활동하면서 아이들에게 문학과 그림, 음악 등을 가르쳤다. 뒤샹 형제 6남매 중 4명이 미술가가 되었으며, 뒤샹이 학교에 다닐 무렵 큰형 둘은 각각 법률과 의학 공부를 그만두고 미술가의 길을 걸었다. 큰형은 자크 비용이란 이름으로 화가로 활동했고, 둘째 형은 레이몽드 뒤샹-비용이라는 이름으로 조각가가 되었다. 누이동생 쉬잔 역시 이후 쉬잔 뒤샹-크로티라는 이름으로 화가로 활동한다. 그의 아버지는 자식들의 예술 활동을 전폭적으로 후원했다고 한다.

뒤샹은 이런 분위기에서 고향 마을 풍경을 습작하며 자랐고, 특히 모네의 화풍을 좋아했다. 1904년에 중등학교를 졸업한 뒤샹은 형이 있는 몽마르트르로 가서 미술 수업을 받았다. 형 주변의 예술가, 작가와 어울리면서 그는 아방가르드 운동의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판화가 오딜롱 르동을 가리켜 자기 작품의 시작점이라고 일컫기도 했다. 또한 말라르메, 에드거 앨런 포 등의 작품과 상징주의 문학에 경도되었다. 이 시기에 그는 만화잡지에 풍자만화를 그렸으며, 판화 기법도 배웠다. 또한 인상주의와 야수파, 입체파적 화풍을 두루 섭렵하였으나 특정 작품을 모방하는 건 꺼렸다.

마르셀 뒤샹

1912년, 뒤샹은 예술가 활동의 큰 전환점이 될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2〉를 완성했다. 입체파 양식을 받아들여 그린 그림이었으나 이는 ‘이즘’을 중요시하는 입체파 그룹에게 미래주의적으로 여겨지며 냉대받았다. 이 일로 그는 체계적이고 구속적인 ‘이즘’에서 탈피하려는 마음을 먹었다. 이때 그는 ‘이게 그들이 원하는 거라면 어떤 그룹에도 낄 이유가 없어. 나는 앞으로 나 자신에게만 의지하겠어’라고 결심했다. 이 작품은 이듬해 뉴욕 아모리 쇼에 출품되었고,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때의 성공을 잘 이용했다면 그는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현대 젊은 미술가로서의 위상과 상업적 성공을 모두 거머쥐었을 것이다. 그러나 파리에서 악평을 들은 그림이 뉴욕에서 성공한 일은 오히려 그에게 전통적인 예술에 대한 믿음을 허물어트리고, 회화를 멀리하게 만들었다.

뒤샹의 초기 습작 및 회화 작품들을 보면 그가 화가로서 뛰어난 기교와 타고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과정은 지나치게 지성적이었던 젊은 화가에게 예술과 상식 세계에 대한 회의를 안겨 주었고, 그 결과 현대 미술의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레디메이드(Ready-made)를 고안하게 만들었다.

뒤샹은 그림 그리기를 그만두었지만 새로운 작품 양식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급격하게 산업화되고 공산품이 쏟아져 나오던 20세기 초기의 사회상과 산업 디자인을 받아들였다. 1912년 브랑쿠시, 페르낭 레제와 함께 항공 박람회를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뒤샹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제 회화는 망했어. 저 프로펠러보다 멋진 걸 누가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이 말에서 예술가의 기교나 솜씨에 의존하여 작품을 제작하던 ‘전통적인 미술’에 대한 관념, 미술품과 기성품의 경계 등이 허물어지면서 현대 미술이 탄생했다. 인공물이나 자연의 일부분을 이용하여 제작하는 현대 미술 작품들은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일상과 예술을 혼돈스럽게 뒤섞는다.

이 무렵 뒤샹은 절대적이고 분명한 노선을 가지고 활동하는 예술가 그룹에 회의를 느끼고, 생트 주느비에브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며 자신만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1913년 첫 번째 레디메이드 작품 〈자전거 바퀴〉를 제작했다. 평범한 나무 의자와 자전거 바퀴를 결합한 뒤샹의 〈자전거 바퀴〉는 기성품이라도 예술가가 선택하고 조합하면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그는 예술가의 창작 행위란 작품을 제작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정신 표현, 즉 아이디어에 있다고 사고를 전환시켰다. “나는 미술을 믿지 않는다. 미술가들을 믿는다.”라는 말 속에 그의 사상이 담겨 있다. 레디메이드가 예술에 대한 진지함을 비웃는 태도 이상으로 여겨지며 현대 미술의 한 양식으로 자리 잡는 것은 이로부터 약 40여 년이 지난 후이다.

그 후 10여 년간 뒤샹은 레디메이드 작품들을 꾸준히 제작했다. 물건을 개조하는 수고를 들이기도 했으나 때로는 제목만 붙이기도 했다. 눈 치우는 삽을 구입해 거기에 서명을 하고 〈부러진 팔보다 앞서서〉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으며, 1917년에는 변기를 구입해 ‘R. Mutt 1917’이라고 서명하고 미국 독립미술가협회가 개최하는 앵데팡당전에 출품했다.

이 작품이 20세기 예술의 대표적 아이콘으로 꼽히는 〈샘〉이다. 무트(R. Mutt)라는 가명으로 출품한 이 작품은 예술품 전시 참여를 ‘모든 사람, 모든 작품에 개방한다’라며 예술의 자유를 표방한 독립미술가협회의 슬로건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상도, 심사위원도 없는 이 전시회에서 뒤샹은 배치위원회 위원장이었다). 결국 이 작품은 전시 참여를 허락받지 못했고, 사진작가 스티글리츠의 사진으로만 남았다. 뒤샹은 이를 비웃으며 자신이 창간한 잡지 〈더 블라인드 맨〉을 통해 작품 의의를 설명했다.

무트 씨가 직접 〈샘〉을 만들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그는 그것을 선택했다. 일상용품을 선택하고, 그것에 새로운 관점과 이름을 붙임으로써 본래의 사용가치에 대한 고려가 아닌 그 대상에 대한 새로운 사고가 창조되도록 했다.


1919년, 뒤샹은 길거리에서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인쇄된 싸구려 엽서를 한 장 구입했다. 그리고 모나리자의 얼굴에 수염을 그려 넣고, 알파벳 대문자로 ‘L.H.O.O.Q’라고 적어 넣었다. 프랑스어로 ‘엘.아슈.오.오.뀌’로 읽히는 이 단어는 ‘그녀는 엉덩이가 뜨겁다’라는 의미의 ‘Elle a chaud au cul’를 연상시켰다. 사소한 장난으로 치부될 수 있는 이 행위는 기존의 예술품과 예술가가 지니는 전통, 신화적 권위에 대한 조롱으로 받아들여지며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천재성, 창조성에 관한 맹신을 무너뜨리는 뒤샹의 이 같은 행위는 반예술(Anti-Art)의 전형이라 할 수 있으며, 이후 현대 미술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반예술이란 뒤샹이 1914년 창안한 것으로, 예술에 대한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부정하는 개념이다. 일견 다다이즘(Dadaism) 운동과도 비슷한데, 뒤샹은 다다이즘이 일어나기 수년 전부터 이미 이런 사고를 확립하고 있었던 것이다.

뒤샹은 1923년 〈거대한 유리〉를 미완성으로 남겨 두고, 예술 활동을 중단했다. 파리로 돌아간 그는 체스를 두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프로 체스 선수가 되어 파리와 뉴욕을 오가기도 했다. 이런 행동 자체가 예술 표현 행위에 대한 조소로 읽히며, 예술계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뒤샹은 이 시기에 자신을 추종하는 무리에게도 어떤 유파나 이즘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하고, ‘위대한 침묵’으로 일컬어지는 삶을 살았다. 미술가 그룹들과는 거리를 두었으며, 예전의 다다이스트였던 파리의 초현실주의자 친구들과만 지속적으로 교류했다.

한편 뒤샹은 공식적으로는 예술 활동을 중단했지만,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했다. 20년간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않고 작업한 최후의 작품 〈주어진 것들〉은 1968년 그가 생을 마감한 후 유언에 따라 공개되었다.

뒤샹의 작품이 지닌 중요한 의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세대의 미국 미술가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는 현대 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놓았다고 평가받으며, 국제적으로 크게 명성을 떨쳤다. 조용한 생활을 하며 ‘때때로 잊힌 예술가로 남고 싶다’라는 바람과는 달리 뒤샹은 ‘예술의 관점을 완전히 뒤집어 버린 성상 파괴주의자’라는 찬사를 받으며, 현대 미술사에 가장 큰 족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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