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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톨스토이

o예술가의 삶과 작품

by 송강 작가 2018. 4. 7.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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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정점

레프 톨스토이

톨스토이, Lev Nikolayevich Tolstoy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Lev Nikolaevich Tolstoi)



 

출생1828년 09월 09일
사망1910년 11월 20일
국적 러시아
대표작《안나 카레니나》, 《전쟁과 평화》, 《부활》 등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역사와 개인 삶의 모순을 분석하며 러시아 문학과 정치에 큰 영향을 끼쳤다.

        
레프 톨스토이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 톨스토이는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정점이자 혁명의 거울, 위대한 사상가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안톤 체호프는 "톨스토이는 모든 이를 대변한다. 그의 작품은 사람들이 문학에 거는 기대와 희망을 모두 충족시켜 준다."라고 말했으며, 막심 고리키는 "한 세기에 걸쳐 체험한 것의 결과를 놀랄 만한 진실성과 힘과 아름다움으로 표현했다."라고 말하며 톨스토이를 '세계 전체'라고 일컬었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는 1828년 9월 9일(러시아 구력 8월 28일) 러시아 남부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니콜라이 톨스토이 백작, 어머니는 볼콘스키 공작가의 상속녀인 마리야 니콜라예브나이다. 출생지인 야스나야 폴랴나는 어머니가 지참금으로 가져온 영지였다.

그가 3세 때 어머니가 여동생을 낳다 산욕열로 죽었고, 9세 때 아버지까지 길거리에서 급사하자 그는 후견인인 고모 집에서 자랐다.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았으며, 16세 때 카잔 대학교 동양어대학 아랍-터키어과에 입학했지만 공부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어 학위를 받지 못하고 중퇴했다. 러시아의 정통 귀족답게 사교계를 들락거리며 방탕하게 생활하고, 형과 함께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자주 여행했다.

1849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법학사 자격검정시험을 보았으나 중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난잡하게 지낸 지난 3년을 반성하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형 니콜라이의 뒤를 따라 캅카스로 가서 군에 자원입대했으며, 이 시기를 전후로 본격적으로 습작을 했다. 그리하여 이듬해 네크라소프의 추천을 받아 〈동시대인〉에 〈소년 시절〉, 〈청춘 시절〉로 이어지는 3부작 첫 편인 〈유년 시절〉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

1853년에는 체첸 토벌에 참전했으며, 1854년에는 크림 전쟁 중 세바스토폴 공방전에 참전했고, 1856년 퇴역했다. 군인 생활을 하면서도 고위 계급 군인 청년들이 그랬듯이 술, 여자, 도박 등 방탕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군 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단편들을 꾸준히 발표했다.

퇴역 후 고향으로 돌아온 톨스토이는 당시 러시아를 휩쓴 자유주의 물결에 동참해 영지의 농노들을 해방시켜 주려고 시도했으나, 농민들이 그를 믿지 못하고 거절하여 실패로 돌아갔다. 대신 그는 농민 계몽운동을 위해 학교를 열었다. 톨스토이는 농민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그들을 계몽하고 권익을 향상시켜 주고자 꾸준히 노력했는데, 그럼에도 정통 귀족 출신이라는 사고방식의 한계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 역시 당대 귀족들이 가지고 있던 도덕적 불감증에서 무관할 수 없었는데, 자기 영지 농노의 아내와 관계를 가져 사생아를 낳고, 그 아이를 후일 정식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의 마부로 부리기도 했다. 사생아를 낳았을 때는 그 여인과 진지한 사랑의 결실이라고 일기에 쓰기도 했다.

톨스토이는 농노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열었을 뿐만 아니라 아동 교육에 관한 논문을 집필하기도 하고, 유럽 여러 나라의 교육 시설을 시찰했으며, 〈야스나야 폴랴나〉라는 교육 잡지를 집필하는 등 열정을 다했지만, 눈에 띄는 성과가 없자 2년 만에 학교 문을 닫고 잡지 역시 폐간했다.

1862년, 톨스토이는 러시아 상류 사회에서 이름난 외과의사 베르나 박사의 둘째 딸 소피야 안드레예브나 이슬레네프와 결혼했다. 그녀는 당시 18세였고, 무절제하고 금전 감각에 둔했던 톨스토이와 정반대로 현실 감각이 뛰어나 영지와 재산을 빈틈없이 관리했다. 두 사람은 반세기 가까이 결혼 생활을 하면서 13명의 아이들을 낳았다. 또한 소피야는 남편을 위해 원고를 필사해 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는데, 《전쟁과 평화》는 7번이나 필사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소피야는 당시 자유주의 사상을 지닌 귀족 남성들이 가진 복합적인 모순을 톨스토이에게서 발견하고 혐오했으며, 이상주의자였던 톨스토이 역시 현실주의자인 아내를 불편하게 여겼다.

톨스토이는 소설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장편소설은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와 만년에 완성한 《부활》 등 세 편에 불과하다.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는 40대에 발표하여 그에게 많은 문학적 명성을 안겨 주었으나, 이후 그는 아동 교육, 신학과 성서 연구 등에 몰두했다. 만년의 톨스토이는 철학가, 사상가로 더 유명했으며, 다양한 정치적 저술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지지했다.

《전쟁과 평화》는 1812년 일어난 나폴레옹 전쟁을 중심으로 러시아 사회의 모습을 보여 주는 대작으로, 보르콘스키 가, 로스토프 가, 쿠라긴 가의 인물들과 피에르 베주호프 백작 등을 중심으로 전쟁 속에서 인간의 운명을 그려 낸 작품이다. 톨스토이는 당초 1825년 청년 귀족 장교들이 니콜라이 1세에 대항해 벌인 데카브리스트 반란에 대해 쓰려고 했지만, 스펙트럼을 넓혀 1805년 러시아의 황금시대부터 나폴레옹 전쟁, 1825년 12월 혁명운동까지 다루었다. 등장인물만 해도 599명에 달하는 방대한 이 소설에서 톨스토이는 역사와 개인의 삶을 유기적, 총체적으로 통합하면서, 19세기 러시아 귀족 가문의 삶을 생생하고 역동적으로 그려 냈다. 여기에 더해 수많은 인물들의 내면 심리를 독자적으로 묘사하여 인물의 백과사전이라 불릴 만한 전범을 창출해 냈다.

톨스토이는 1869년 《전쟁과 평화》를 완성하고, 1873년부터 《안나 카레니나》의 집필에 착수했다. 이로부터 5년 후 출간된 《안나 카레니나》는 농노제 붕괴에서 혁명에 이르는 러시아의 역사 변동을 배경으로, 귀족 부인 안나 카레니나와 젊은 장교 브론스키 백작과의 불륜을 통해 사랑과 결혼, 가족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두 작품으로 톨스토이는 '러시아의 호메로스'로 불리는 등 국가적인 대문호의 위치에 올랐으며, 두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세계 문학 비평가들의 무조건적인 애정과 찬사를 받고 있다.

톨스토이는 두 소설을 집필하면서 신학과 인간 구원이라는 문제에 빠져들었고, 동시에 청빈하고 단순한 삶을 추구하면서도 귀족적 안락을 떨치지 못하는 자신을 혐오하게 되었다. 그는 다양한 우화와 중단편, 논문 등을 통해 일명 '기독교적 아나키즘'이라 불리는 자비, 금욕, 청빈, 비폭력을 강조하는 기독교적 생활, 즉 톨스토이주의를 표현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두 노인〉, 〈기도〉 등과 같은 민화를 쓰고, 《요약 복음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현실주의자인 아내와의 사이는 더욱 벌어졌다. 한편 톨스토이를 성인으로 추대하는 추종자들이 야스나야 폴랴나로 모여들었는데, 그중 블라디미르 체르트코프라는 인물은 톨스토이의 사상을 지지하며 그와 아내의 사이를 벌리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1978년 러시아에서 발행된 톨스토이 탄생 150주년 기념 우표

1891년, 톨스토이는 자신의 사상을 실천하고자 작품 저작권을 포기하기로 했다가 가족들과 크게 대립했고, 새로운 신앙을 주창하면서 당국의 검열을 받게 되었다. 〈나의 신앙은 무엇에 있는가〉는 당국에 압수당했으며,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는 판매 금지 처분을 받았다. 이런 충돌이 지속된 끝에 그는 종교 문제로 1901년 러시아 정교회에서 파문을 당한다. 그러나 그동안 명망 높은 사상가로 존경받던 톨스토이에 대한 이런 조치는 대중의 공분을 샀다. 그런 한편 1899년에는 《부활》을 발표하면서 말년에 이르러서도 필력을 과시했다. 《부활》은 문학적 완성도 측면에 있어서는 앞의 두 작품에 미치지 못했으나 대중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파문 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글을 통해 종교적 견해를 피력하고, 노동자 계몽에 힘썼다. 그의 명성은 국내외적으로 절정에 달했으며, 1908년 80세 생일에는 전 세계에서 명사들의 축하 편지가 날아왔다.

톨스토이와 그의 딸 알렉산드라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Lev Nikolaevich Tolstoi)
제정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사상가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Lev Nikolaevich Tolstoi, 1828~1910)는 1828년에 명문 백작가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 할머니를 모두 여의고 친척들의 손에서 내성적인 소년으로 자랐다. 16세에 카잔대학교에 입학했으나 ‘대학은 학문의 무덤이다’라고 생각해 2년도 되기 전에 중퇴했다. 그리고 모스크바에서 200킬로미터가량 떨어진 남쪽의 영지 야스나야폴랴나로 돌아가 농지 개혁을 시도했으나 무참하게 실패해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방탕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1852년에 형 니콜라이를 따라 카프카스로 가서 웅대한 자연 속에서 생활하며 다시 일어섰다.

그곳에서 포병대 장교로 근무하는 한편 문학 활동을 시작해 처녀작인 『유년 시절』(1852)을 잡지 『소브레멘니크』(러시아어로 ‘동시대’라는 뜻)에 발표하는 것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크림전쟁에서는 세바스토폴의 격전에 참가했고, 한편으로는 『소년 시절』(1854) 등 기타 작품을 잇달아 발표해 1855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귀환했을 때는 이미 주목받는 신진 작가가 되어 있었다.

군대에서 제대한 이듬해인 1857년에 떠난 최초의 유럽 여행에서 그는 단두대를 이용한 사형 집행을 보고 서유럽 문명에 깊이 절망했다. 귀국한 뒤에는 교육 활동도 활발하게 시작했다.

1862년 궁정 의사 베르스의 딸로 18세였던 소피아와 결혼하고 새로운 경지로 접어들어 대작인 『전쟁과 평화』(1864~1869), 『안나 카레니나』(1873~1876)를 완성했으나, 이 무렵부터 인생의 의미와 신의 존재에 대해 심각한 사상적 동요를 경험하게 되었고, 결국 종교에서 구원을 찾았다. 그리고 『참회록』(1882), 『나의 신앙』(1884) 등의 글로 근대 문명과 국가를 부정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주장하는 독자적인 아나키즘을 확립했다.

말년에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 『크로이체르 소나타』(1890), 『부활』(1899) 등의 작품을 썼으나, 구도자로서의 자기 모순과 부인 소피아와의 가정적 갈등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1910년 10월 새벽에 가출하면서 방랑의 여행에 나섰다. 그러나 여행지에서 병을 얻어 그 해 11월 7일 랴잔의 한 외딴 마을인 아스타포보의 간이역(지금의 톨스토이 역)의 역장 관사에서 82세의 생애를 마감했다.



그러나 그의 개인적인 생활은 편치 않았다. 그는 1910년 체르트코프의 조언에 따라 유일하게 자신의 편을 들어주던 딸 알렉산드라에게 모든 저작권을 넘기겠다는 유언장을 작성했고, 이후 아내와의 갈등이 극으로 치달았다. 그리하여 1910년 10월 29일 밤 아내와 크게 싸운 톨스토이는 아내에게 이별 편지를 남기고 가출을 감행했다. 잠시 샤모르지노의 여동생 집에서 머물다 기차를 타고 나선 그는 폐렴에 걸려 11월 20일(러시아 구력 11월 7일) 새벽 아스타포보 역에서 사망했다. 시신은 야스나야 폴랴나로 운구되어 영지의 숲에 안장되었다.



전쟁과 평화

전쟁 속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묘사

1805년 나폴레옹의 지휘 아래 유럽을 석권한 프랑스군과 러시아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청년 공작 안드레이 볼콘스키는 영지 ‘민둥산’에 은둔하고 있는 아버지와 여동생 마리야에게 임신한 아내를 맡기고 쿠투조프 장군의 부관으로 전쟁터를 향해 출발한다. 이 전쟁은 그에게 빛나는 미래와 영광을 가져다줄 것이었다.

안드레이의 친구로 유학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피에르는 모스크바에서 손꼽히는 재산가 베주코바 백작의 사생아인데, 백작이 죽은 뒤 그의 유언으로 전 재산을 상속받고 단번에 사교계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거기에 눈독을 들인 후견인 쿠라긴 공작은 아름답기는 하지만 품행에 문제가 많은 자신의 딸 엘렌을 그에게 시집보내려 하고, 그 계획은 성공을 거둔다.

그해 11월 안드레이는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패배한 러시아군에서 홀로 군기를 손에 들고 적진에 쳐들어가 중상을 입는데, 그때 문득 머리 위에 펼쳐진 깊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그 장엄함에 감동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기가 가졌던 야심과 명예욕, 위대한 인물이라고 숭배하고 있던 나폴레옹 등 모든 것이 참으로 보잘것없고 사소한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한편, 피에르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친구 돌로호프와 아내 엘렌 사이에 이상한 소문이 나돌자, 명예를 지키기 위해 결투를 신청해 상대방을 쓰러뜨린 뒤 아내와 별거한다. 그 이후로 그는 선악과 생사에 관한 문제를 놓고 고민하다가 프리메이슨의 지도자를 알게 되어 이후 새로운 신앙 생활을 시작한다.

전사했다고 생각했던 안드레이가 느닷없이 민둥산으로 돌아온 그날 밤, 아내 리사는 아들을 낳고 그대로 숨을 거둔다. 안드레이는 이제 자기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하고 영지에서 평생을 보낼 결심을 한다.

1807년 6월 러시아와 프랑스는 강화를 맺고 평화로운 생활이 시작된다.

1809년 봄, 안드레이는 귀족회의 일로 로스토프 백작의 집을 찾아갔다가 생명력이 넘치는 젊은 아가씨 나타샤에게 강하게 끌린다. 그해 말, 두 사람은 무도회에서 다시 만나 얼마 뒤에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약혼하지만, 민둥산의 늙은 공작이 심하게 반대해 1년 동안 유예 기간을 두기로 하고 안드레이는 외유한다. 그러나 젊은 나타샤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엘렌의 오빠 아나톨리의 유혹에 넘어가 도망칠 약속까지 하는 바람에 약혼이 파기된다.

1812년 다시 프랑스와 러시아 사이에 전쟁이 시작되고, 안드레이는 보로디노 전투에서 중상을 입는다. 러시아군은 철수를 계속하다가 드디어 모스크바까지 내주게 된다. 로스토프가에서는 가재도구를 싣기 위해 조달한 마차로 부상병을 수송하기로 결정하는데, 그때 나타샤가 그 속에서 빈사 상태인 안드레이를 발견하고 자신의 죄를 사과하며 필사적으로 간호한다. 그러나 그런 보람도 없이 안드레이는 숨진다.

피에르는 모스크바에 머물며 평민의 모습으로 분장하고 나폴레옹을 암살할 기회를 노리다가 프랑스군의 포로가 된다. 그의 아내 엘렌은 전쟁 중에도 음란한 행위를 계속하다가 낙태약을 잘못 먹고 고통 속에서 죽는다.

전쟁은 러시아의 승리로 끝나고, 모스크바에서 나타샤를 만난 피에르는 그녀를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고 결혼한다. 안드레이의 여동생 마리야도 나타샤의 오빠 니콜라이와 결혼해 각자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각주1)


나타샤를 통한 생명 긍정 사상의 구현

『전쟁과 평화』는 다원적인 소설이기 때문에 주인공을 특별히 지정할 수는 없지만, 작품의 중심이 되는 사람은 로스토프가의 딸 나타샤이다. 나타샤는 톨스토이가 이 작품 속에서 표현한 생명 긍정 사상의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천진난만하고 조금의 거짓도 없으며 항상 자연스럽게 행동한다. 백작가의 딸로 곱게 자랐으면서도 사냥을 한 뒤 가난한 지주인 백부의 집에서 민요에 맞추어 춤을 추기도 하는 활달한 여성이다. 모든 러시아인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그녀는 천부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은둔 생활을 보낸 뒤 그녀를 알게 된 안드레이 공작이 ‘내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느끼고 ‘그녀를 떠올리기만 해도 인생 전체가 새로운 빛에 둘러싸인 듯하다’고 느낄 정도로 강하게 삶의 의지를 표현한 것도 그녀가 가진 발랄한 영혼의 힘 덕분이다. 나타샤는 순수한 러시아 여성이자 러시아 문학에 나오는 여성 중에서도 가장 생기 발랄하고 매력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다.각주2)


작품 속의 명문장

“어째서 지금까지 이렇듯 높은 하늘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제야 이것을 알게 되어 나는 정말 행복하다. 맞다! 이 끝없는 하늘 말고는 모든 것이 허무하고, 모든 것이 기만이다. 이 하늘 말고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쓰러졌던 안드레이 볼콘스키가 의식을 되찾은 뒤 머리 위에 펼쳐진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되뇐 말. 안드레이는 영원을 상징하고 있는 푸른 하늘에 비해 이 지상의 영광이나 욕망 같은 것은 참으로 사소하다고 느끼는 순간 자신의 인생관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자각한다.
“모든 전투는 이를 계획했던 사람의 예상대로 벌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무수한 자유로운 힘이 싸움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생사 문제가 달린 전투 기간만큼 인간이 자유로운 때는 없기 때문이다. 이 방향은 절대 미리 알 수 없으며 어떤 하나의 힘이 나아가는 방향과 일치하지 않는다. 다양한 방향으로 향하는 많은 힘들이 어떤 물체에 동시에 작용한다면 그 물체가 움직이는 방향은 이 많은 힘 가운데 어느 것과도 일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안나 카레니나

관능적인 사랑과 그리스도교적인 사랑을 대비해 묘사하면서 1870년대 러시아 귀족 사회의 양상과 여성의 애정 심리를 밀도 있게 그린 일종의 가정소설이자 사회소설이다. 톨스토이의 소설 가운데 예술적 완성도가 가장 높은 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미모의 귀족 부인 안나의 부정한 사랑

나이가 훨씬 많은 고관 카레닌과 결혼해 평화롭게 생활해 온 아름다운 안나는 오빠인 오블론스키와 그의 아내 돌리의 가정 파탄을 막기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왔다가 청년 장교 브론스키를 알게 된다. 브론스키는 돌리의 여동생 키티의 결혼 상대라고 주위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청년이다. 우연히 오블론스키의 친구 레빈도 키티에게 청혼하기 위해 시골에서 상경했지만, 브론스키에게 마음이 끌린 키티는 레빈의 청혼을 거절한다. 그러나 그 브론스키는 안나를 보자마자 사랑의 포로가 되어 그녀를 따라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가는 바람에 키티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준다.

처음에는 자신을 억제하고 있던 안나도 점차 브론스키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는 것을 느낀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되고, 그러다가 안나가 그의 아이를 임신한다. 브론스키는 당장 남편과 헤어지라고 하지만 안나는 외아들 세료자에 대한 연민 때문에 결심을 하지 못한다. 남편 카레닌과 함께 브론스키가 출전하는 경마를 보러 간 안나는 그가 장애 경주에서 낙마했을 때 너무 당황해 자신을 잃는다. 그러는 바람에 남편이 사태를 눈치채게 되었고, 돌아가는 길에 안나는 모든 것을 남편에게 고백한다.

실연으로 인해 상심한 키티는 건강이 나빠져 독일의 온천에서 요양한 뒤 다시 건강을 되찾아 러시아로 돌아온다. 한편 키티로부터 청혼을 거절당하고 시골로 돌아간 레빈은 농촌 경영에 열중하지만, 마음속의 빈틈은 메워지지 않는다. 농촌 사정을 시찰하기 위해 유럽으로 건너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모스크바에 들른 그는 오블론스키의 집에서 키티를 다시 만나 그녀에 대한 사랑이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았음을 자각한다. 키티도 그의 성실한 인품을 존경하며 예전의 무례를 사과한다.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져서 이윽고 주위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한다.

한편, 안나가 모든 일을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카레닌은 세상에 대한 체면 때문에 이혼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윽고 그녀는 딸을 낳는데 산후 조리에 문제가 생겨 중태에 빠진다. 그녀는 남편과 브론스키에게 화해해 달라고 부탁하고, 감동한 남편은 모든 것을 용서하겠다고 약속한다. 절망한 브론스키는 권총으로 자살하려고 하다가 실패해 목숨을 건진다. 그는 회복한 뒤에 전임하게 되어 안나에게 이별을 고하러 가지만,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자신들의 정열을 억누를 수가 없어 모든 것을 버리고 유럽으로 도망친다.

긴 유럽 여행을 마치고 러시아로 돌아온 두 사람은 사교계에서 배척을 당하자 도망치듯 브론스키의 영지로 들어가 시골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원래 활동적인 사람이었던 브론스키에게 시골에 틀어박힌 생활은 견딜 수 없이 힘든 것이어서 그는 점차 귀족회 일 등으로 나가는 일이 많아진다. 가정과 자식, 사회적인 지위를 모두 버리고 이제 브론스키만이 삶의 보람으로 남은 안나는 자꾸만 육체적인 쾌락에 몰두하면서 그를 자기 곁에 붙잡아 두려 한다. 그럴수록 안나의 사랑은 이기적으로 변하면서 지나칠 정도로 심한 질투를 품게 된다. 예전처럼 변함없이 안나를 사랑하던 브론스키도 그의 자유를 지나치게 속박하려는 그녀가 때로는 짐처럼 느껴진다. 그러다가 브론스키의 어머니가 그에게 제대로 된 생활을 하라면서 혼담을 진행시키고 있음을 알게 된 안나는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이 없다고 느껴 철도에 투신해 자살한다.

그녀의 자살로부터 두 달 뒤, 브론스키는 세르비아 독립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자비로 의용군을 편성해 전쟁터로 향한다.각주1)


안나 카레니나 - ‘생명의 불꽃’을 머금은 아름다운 여인

안나 카레니나는 세련된 미모의 여성으로 생기 발랄한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다. 브론스키가 역 앞에서 처음으로 안나를 만났을 때, 그녀의 시선에서 그는 강한 생명력을 느낀다. 톨스토이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이 짧은 시선 속에서 벌써 브론스키는 그녀의 얼굴에서 춤추고 있는 억제된 생기를 간파했다. 그것은 밝게 빛나는 눈과 붉은 입술에서 피어나는 엷은 미소 사이를 오가며 장난스럽게 헤엄치고 있었다. 마치 넘쳐나는 무엇인가가 온몸에 가득 차서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빛이나 미소 속에 나타나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의식적으로 눈빛을 지웠지만, 그녀의 의지에 반해 그 빛은 알아차릴 듯 말 듯 한 미소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안나가 가진 최대의 매력은 그야말로 끊임없이 ‘생명의 불꽃’을 속에서 불태우고 있는 듯한 젊은 생기에 있었던 것이다.

안나는 또한 지성과 교양이 풍부한 여성이기도 하다. 밤 기차 속에서도 그녀는 영국 소설을 어느새 자기가 작품의 여주인공이 된 것같이 열심히 읽는다.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브론스키와 도망친 뒤에도 소설도 좋고, 딱딱한 책도 좋고,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라면 아무것이나 닥치는 대로 열심히 읽었으며, 외국 신문이나 잡지에서 칭찬하고 있는 책은 모조리 독파한다. 더구나 그녀의 지적인 관심은 단순히 문학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브론스키가 관심을 보이는 분야는 서적이나 전문 잡지를 통해 모두 섭렵해 나중에는 브론스키가 그녀에게 조언을 구할 정도가 된다.

그러나 이렇게 대단한 그녀도 브론스키와 격렬한 사랑의 폭풍에 휘말리게 되자 한낱 ‘여자’가 되어 버린다. 그녀는 브론스키와 시골 생활을 하면서부터는 그토록 사랑하던 외아들 세료자에 대한 생각조차 전혀 하지 않게 된다.

원래 안나는 가정과의 연계가 매우 희박한 여성이다. 브론스키와 함께 한 생활에서도 일상생활의 갖가지 면이나 식탁에서 필요한 모든 면에 세세하게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안나가 아니라 브론스키이다. 그리고 브론스키와 맺어진 것도 정신적이거나 지적인 면보다는 ‘넘쳐 나는 무엇인가가 온몸에 가득 차서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녀를 브론스키의 품으로 달려가게 했다고 할 수 있다.


작품 속의 명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게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모습이 제각기 다르게 마련이다.”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서두의 문구로 매우 유명한 말이다.
“명마(名馬)는 낙인을 보면 알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은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키티에게 청혼하기 위해 상경한 레빈에게 오블론스키가 했던 말.



부활

요약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와 함께 톨스토이의 3대 작품에 속하는 소설로, 사회 조직과 법률의 허점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책의 제목인 ‘부활’은 한 인간의 정신적 부활이자 새로운 러시아의 탄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귀족 청년과 매춘부가 인간의 영혼으로 부활하는 과정

네흘류도프 공작은 어느 날 지방 법원의 배심원으로 법정에 나갔다. 재판은 살인 강도 사건으로, 어느 매춘부가 손님에게 독을 먹여 죽이고 돈과 반지를 훔쳤다는 것이다.

네흘류도프는 피고의 얼굴을 보고 있다가 카튜샤 마슬로바라는 이름을 듣고는 깜짝 놀란다. 그가 청년 시절에 고모의 집으로 놀러 갔을 때 그곳에 있던 아름답고 청순한 하녀를 유혹해 임신시킨 뒤 나중에 돈 몇 푼을 쥐여주고 버렸던 적이 있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피고가 바로 그 하녀인 카튜샤였던 것이다. 그녀는 그 뒤에 타락해서 결국 매춘부가 되었다. 그녀는 사실 무죄였는데 법정 수속이 잘못되는 바람에 징역 4년형이 확정되어 시베리아로 유형을 가게 된다.

네흘류도프는 자기 때문에 한 여자가 파멸했다는 사실에 깊은 죄의식을 느끼고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구하려고 결심한다. 그는 형무소에 있는 그녀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고, 변호사를 찾기도 하고, 유력자에게 도움을 부탁하기도 하지만, 형을 바꿀 수가 없어 카튜샤는 죄수들과 함께 시베리아로 향한다. 네흘류도프도 귀족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버리고 그녀를 따라간다.

카튜샤의 사건이 시베리아에서 판결 취소 명령을 받게 되자, 네흘류도프는 그 소식을 가지고 카튜샤를 찾아간다. 그는 이제 자유의 몸이 될 그녀와 정식으로 결혼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카튜샤는 정치범인 시몬손이라는 혁명가와 결혼하기로 결정한 뒤였고, 네흘류도프에게 허락을 구한다. 그녀도 마음속으로는 네흘류도프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고 그에게 감사하고 있지만, 그의 장래를 생각해 일부러 새로운 길을 선택한 것이다.

네흘류도프는 복잡한 마음으로 그녀를 축복한다. 그 뒤 그는 성경을 읽는다. 그리고 성경 속에 나타나 있는 무한한 사랑으로 진실을 찾아가면서 살아가야겠다고 결심한다.각주1)


카튜샤, 순수한 영혼으로 다른 영혼을 구원하다

카튜샤 마슬로바는 떠돌이 집시와 여자 농노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이다. 3세 때 어머니가 죽자, 여자 지주의 집으로 가서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다. 그녀는 저택에서 반은 하녀, 반은 양녀와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호칭도 여종들처럼 카티카라는 비칭(卑稱)이나 카튜니카라는 애칭이 아니라 그 중간인 카튜샤였던 것이다.

16세에 네흘류도프를 처음 만났을 때 카튜샤는 눈이 검고 생기 발랄한 순진한 소녀였다. 아니, 그로부터 3년 뒤에 그를 다시 만났을 때도 카튜샤는 전과 변함없이 귀여웠고, 약간 사팔뜨기 같은 눈으로 위를 올려다보는 모습도 똑같았다. 청순한 그녀는 순수한 마음으로 네흘류도프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사랑을 이용해 네흘류도프는 그녀의 정조를 빼앗고, 하룻밤 쾌락의 대상으로 삼은 다음 헌신짝처럼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매춘부로 타락한 뒤에도 카튜샤는 영혼의 밑바닥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을 잃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죄를 뉘우친 네흘류도프의 진실한 말에 마지막에는 성실하게 답하며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갱생으로 네흘류도프도 인간으로 다시 부활한다.


작품 속의 명문장

“인간이란 강과 같은 것이다. 어떠한 강이라도 물 그 자체는 마찬가지이고, 어디까지 가도 물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각각의 강이 어떤 때는 좁게, 어떤 때는 빠르게, 어떤 때는 넓게 흐르는 경우도 있으며, 고요한 때도 있고, 때로는 깨끗하고, 때로는 차갑고, 어느 때는 탁해지고, 어느 때는 따뜻해지기도 한다. 인간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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