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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 송태한/'식물도감' 시와 해설

o송태한의 시와 시집

by 송강 작가 2023. 12. 22.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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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 송태한/'식물도감'
시와 해설
시낭송


식물도감
송강 송태한


빼곡한 책시렁에 갇혀있던
큼직한 책을 펼쳐 들면 불쑥
숨어있던 꿀벌이 앵앵거린다
책갈피 잎사귀 틈에서 살며시
모시범나비 날개를 편다

범부채 벌개미취 노루오줌 광대수염
가슴에 이름표 단 유치원생들처럼
앙증맞은 꽃들이 줄지어 얼굴 내밀고
산등성이 구름 몰려가듯
계절이 성큼 건너간다
상수리나무 타고 내려온 다람쥐가
총총걸음으로 책장을 질러간다

식물도감 마지막 쪽
제철 만난 수목원 귀퉁이엔
수줍은 뱀딸기처럼 어느 틈에
꿈꾸듯 나도 기대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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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해설>
빼곡한 책시렁에 갇혀있던 식물도감 안에는 채집한 모든 식물이 살고 있다. “큼직한 책을 펼쳐 들면 불쑥/ 숨어있던 꿀벌이 앵앵거린다/ 책갈피 잎사귀 틈에서 살며시/ 모시범나비 날개를 편다”에서 만난 범부채, 벌개미취, 노루오줌, 광대수염…

시인의 서재는 금세 숲이 되어 상수리나무 타고 내려온 다람쥐가 총총걸음으로 책장을 질러간다. 뛰고 구르며 날아간다. 이 얼마나 생동감 있는 광경인가. 시인이 선택한 활유법(活喩法)으로 시는 꿈틀거린다. “식물도감 마지막 쪽/ 제철 만난 수목원 귀퉁이엔/ 수줍은 뱀딸기 틈에 어느새/ 꿈꾸듯 나도 기대앉아 있다”고 고백한다. 물경(勿驚, 놀라지 마시라), 현실은 픽션이 되고 아름다운 상상에 독자들도 아마 그 숲으로 뛰어들었을 것이다.

힘든 현실에서 우리는 자연을 통해 꿈을 꾸고 힘을 얻는다. 때 묻지 않은 자연은 그 자체로 빼어난 작품이다. 시인은 상상의 힘으로 숲을 불러오고 찌든 현실을 승화시킨다. 송태한 시인에게는 생활에 지친 마음을 정화시키는 “감성의 필터”가 있다. 상상을 도발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역할을 감수하여 자연에 한발 다가서도록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다. 연출된 상황을 통해 독자들은 숲으로 초대되어 시인이 만든 작품 속에서 자연의 호흡을 느끼며 현실에서 일탈하게 될 것이다. “상상과 공상은 현실에 기록될 수 없는 허상의 것이 아니라, 예술적 작업을 이끄는 강력한 동기가 되고, 어느 시점에서 그 효과를 발휘하는 실존”이 된다고 한다. 숱한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현대인들, 저 식물도감 안에 정답이 있다.
-시인 마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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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
식물도감/송강 송태한
https://youtu.be/eFlU2Z2fL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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