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면파를 발전시킨 20세기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로 주요 작품은 .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뉴욕시립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였고 한 가지 색을 사용한 모노크롬 방식의 작품을 주로 그렸다. 캔버스를 가로지르는 선인 지퍼로 전통적 미술 관습에서 탈피해 특별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작품 활동 외에도 비평과 에세이를 통해 현대 미술의 방향성을 제시했고 그로 인한 명성을 얻었다
바넷 뉴먼
미국의 화가로서 색면 추상화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한 가지 색이나 비슷한 색조를 사용하는 모노크롬 방식으로 작품을 그렸다. 신화와 ‘지퍼(Zips)’라는 이름의 캔버스를 세로로 가로지르는 선을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1905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들은 그가 태어나기 5년 전에 폴란드에서 이민 온 유대인계다. 1922년에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미술을 공부했고, 뉴욕 시티 칼리지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 아버지가 운영하는 의류 공장에서 일했으나 1929년 대공황이 터지면서 공장은 문을 닫고 말았다.
1930년대에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그림을 그렸으나 남아 있는 작품은 없다. 1940년대 초에는 거의 그림을 그리지 않았고 자연사, 조류학 등을 공부하면서 미술 평론가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 무렵 현대 미국 미술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베티 파슨스와 친분을 쌓았다. 그녀는 훗날 바넷 뉴먼뿐만 아니라 마크 로스코, 클리퍼드 스틸, 잭슨 폴록 등 추상 표현주의 작가들이 명성을 얻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44년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1948년에는 바넷 뉴먼 그림의 가장 큰 특징인 ‘지퍼’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원먼트Ⅰ〉를 완성했다. 지퍼는 캔버스를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선으로 〈원먼트Ⅰ〉 이후 그가 발표한 모든 작품에 나오는 요소다. 그는 지퍼를 통해 형태, 색, 주제, 재현 같은 전통적인 미술의 관습에서 벗어나 특별한 체험과 감정을 창조하려 했고, 그것을 관람자에게 고스란히 전달하고자 했다.
1950년 베티 파슨스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는데 반응이 좋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작품은 훼손까지 당했다. 이듬해에 전시회를 한 번 더 열었으나 반응은 나아지지 않았다. 1951년부터 1955년까지는 작품을 단 한 점도 공개하지 않았다.
그는 그림 대신 미술 비평과 미학 에세이를 통해서 자신의 예술관을 알리고 현대 미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공격적으로 주장했다. 그런 노력 덕분에 점차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1959년 개인전 이후에는 추상 표현주의 그룹 내에서 주요 작가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와 작품에 대한 오해는 사라지지 않았다. 뉴먼은 자신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 적극적으로 맞섰다.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곳은 아무리 큰 미술관이라도 전시회 제안을 수락하지 않았다.
1966년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었던 전시회를 계기로 마침내 대중적인 명성을 얻었고, 그 이후부터는 그의 대표작들이 줄줄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는 선명하고 순수한 색과 매우 거대한 캔버스를 사용했다. 대표작 〈누가 빨강 노랑 파랑을 두려워하랴〉 시리즈를 비롯해, 1965년 사망한 어머니를 추모하는 작품 〈안나의 빛〉은 그가 만든 가장 거대한 그림으로 꼽힌다. 또한 〈부러진 오벨리스크〉와 같은 대형 조각 작품도 만들었다.
현재는 미국 추상 표현주의의 대표작가 중 한 사람이자 미국 미니멀리즘의 선구자로 평가받지만 잭슨 폴록처럼 화려하지 않아서 대중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기에 예순 살이 되어서야 인정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어떤 특정 유파에 속한다거나 미니멀리즘에 영향을 주었다는 의견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주제와 재현, 색과 선의 관계 등 전통적인 관점으로는 자신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한다면서, 자신의 예술은 아름다움의 재현이 아니라 감각을 넘어선 숭고함에 대한 경험, 영적이고 신성한 체험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1970년 뉴욕에서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